남자들은 '남자의 우정이 여성보다 진하다'는 통념에 사로 잡혀 있다. 우정이 수컷들만의 고유 브랜드인 양 우정의 틀안에서 마음껏 술 취하고 때로는 일탈적인 사고와 행동을 하며 자신들만의 영웅담을 자랑한다. 같은 고등학교를 나왔다는 아주 사소한 끈으로 세상의 정글에서 일과 사랑을 함께 멋지게 쟁취하자 외치며 건배를 한다. 그러나 실상 우정이란 감정만 있을 뿐 상대방의 마음을 깊이 이해하려는 배려는 거의 없는 게 남자들의 우정이다.
"그 친구 항상 명랑하고 자신감 있어 보이던데,갑자기 파산이라니…,어떻게 된거야","그 친구가 이혼했다고,내색 한번 안하던데…." 남자들은 종종 이런 말을 자주 한다. 남자들은 자신의 좋은 점만을 남에게 보이려 한다. 수컷의 본능으로 1등이 되는데 집착하기 때문에 정작 친구의 아픈 구석을 헤아리지 못한다. 우정 안에 망가진 자신의 모습이 드러나고 친구 간에 상하 간 위계가 들어서는 순간 그 우정은 더 이상 존재하기 어렵다. 가슴 속에 숨겨 놓은 상실감은 친구가 아닌 모성 또는 이성으로부터 위로받고자 애쓴다.
남자의 사랑과 우정에는 스피드와 즉각적인 반응성이 있으나 상대방에 대한 미학적 관찰이 결여돼 있다. 자동초점에 초당 몇십장의 연사가 가능한 최신 디지털카메라가 남자의 우정이라면 수동식 필름 카메라처럼 아날로그적이고 세심한 관찰이 동반되는 게 여자의 우정이다. 남성들이 '우린 최신 디카를 가진 최고의 멋진 친구'라는 동질감으로 우정을 맺지만 여성들은 친구의 머리 모양,화장,옷맵시 등 스타일과 매너,성격,가족,일과 사랑 등 모든 정보를 갖고자 차분하게 셔터를 누르는 우정이라 할 수 있다. 공감의 양을 하루 하루 축적해 나가며 우정을 키운다.
남자는 우정이 깨져도 연인과 헤어지듯 가슴이 찢어지는 듯한 감성적 고통을 느끼지는 않는다. 그러나 여자는 이성과의 헤어짐 이상으로 존재의 상실감을 느끼는 경우가 많다. 이는 서로를 세심하게 관찰해 주던 미학적 공동체를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남성 직장인의 스트레스가 가중되고 있다. 남성들이 잔잔하고 조용하나 깊은 관찰이 동반된 여성의 우정을 배우는 것은 나이 들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현명한 방법이 될 것이다.
윤대현 < 서울대병원 강남센터 정신과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