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서울에서 KTX를 타고 부산으로 가던 중 TV를 통해 적어도 열 번은 동남권 신공항이 부산 가덕도에 유치돼야 한다는 광고를 봤다. 또 대구행 KTX에서는 신공항은 반드시 밀양이어야 한다는 광고가 화면을 도배한 듯했다.

정부가 이미 백지화방침을 발표했음에도 지금 상황은 너무 감정적이고 정치적이어서 현지 주민들은 다른 말을 전혀 들으려 하지 않는 것 같다.

미국에서는 신공항을 건설한다고 하면 지역주민들이 강력히 반대하는데 한국에선 모두들 유치에 안간힘이다. 미 연방 하원의원 시절 내 지역구에 온타리오 국제공항이 10년을 끈 뒤에 결국 들어 왔지만 중간급 호텔 하나가 공항 근처에 자리잡은 것 말고는 경제발전은 없었다. 주변의 땅값도 오르지 않았다.

샌디에이고 비행장은 주변 경관이 아름답지만 착륙하기가 위험한 활주로로 알려져 있다. 주택으로 밀집된 언덕을 넘자마자 바다가 보이면서 그 앞에 펼쳐진 활주로에 착륙하려면 대체로 다이빙 방식으로 착륙해야 하기 때문이다. 1980년엔 급기야 대형사고가 나 수백 명이 목숨을 잃었다. 때문에 이 아름다운 공항을 폐쇄하고 다른 곳으로 옮기려 20년을 노력했지만 마땅한 장소가 없다.

캘리포니아 오렌지 카운티의 존 웨인 공항은 고급 주택가에 소음을 주지 않기 위해 이륙할 때 최대 속력을 냈다가 엔진을 거의 끄다시피 한 채 조용히 글라이드로 바다까지 나간다.

공항 같은 큰 시설은 거의 다 공청회를 거쳐야 한다. 어떤 때는 공청회만으로 1년이 걸릴 때도 있다. 공항을 추진하는 정부 쪽과 이를 반대하는 시민들의 목소리를 충분히 듣고 전문가들도 의견을 듣는다. 놀라운 사실은 한국은 동남권 신공항 건설에 대해 단 한번도 공청회를 연 적이 없다는 사실이다. 사전에 공청회를 열었더라면 거부감은 덜 했을 것이다. 입지평가위원회의 점수에 대해서도 주민들이 이해하기 쉽게 좀더 잘 설명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대통령이 심사숙고 끝에 백지화를 선언했다. 대국민 사과를 한 마당에 더 이상 과격한 행동을 삼가고 대통령에 대한 예의를 지키는 것이 선진국 국민이다.

미국도 열렬한 논쟁으로 얼굴들을 붉히지만 일단 결정이 나면 그것으로 끝을 내고 다음 선거 때를 조용히 기다린다. 다행히 내년 4월에 국회의원 선거가 있지 않은가.

김창준 < 전 미국 연방하원의원 · 한국경제신문 고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