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들어 학생 4명이 잇따라 자살한 KAIST에서 이번에는 교수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10일 오후 4시께 대전시 유성구의 한 아파트에서 KAIST 생명과학대의 박모 교수(54)가 목을 매 숨진 채 발견됐다. 박 교수의 아내는 "서울 집으로 오는 날인데 연락이 안돼 내려와 보니 남편이 숨져 있었다"고 말했다. 발견 당시 박 교수는 주방 가스배관에 붕대로 목을 맨 상태였다. 현장에서는 "애들을 잘 부탁한다. 미안하고 사랑한다"는 내용의 A4용지 3장짜리 유서가 발견됐다. 경찰 관계자는 "유서에 KAIST 학생들의 자살에 대한 언급은 없다"며 학생들의 자살 문제와 직접적인 연관은 없는 것으로 보고 있다.

박 교수는 최근 교육과학기술부가 KAIST에 대한 종합감사를 끝내고 연구 인건비와 관련한 징계 및 검찰 고발 방침을 통보하자 고민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동료 교수들도 박 교수가 최근 교과부 감사로 상당한 스트레스를 받아왔다고 전했다. 1996년 9월 부임한 박 교수는 2007년 테뉴어(종신 교수직) 심사를 통과했다. 생체고분자를 이용한 약물전달,유전자치료,조직공학 분야에서 저명한 학자다. 그는 연구업적을 인정받아 지난해 최우수 교수로 선정됐고 올해 시무식에서 '올해의 KAIST인상'을 받았다. 한 보직교수는 "어디서부터 뭐가 잘못됐는지조차 잘 모르겠다"고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KAIST는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일부 교수들이 외부 업체와 연구용역계약을 맺는 과정에서 대가성 금품을 수수했다는 의혹이 제기돼 지난 2월 교과부로부터 종합감사를 받았다. 박준모 교과부 감사관은 "연구비 관리와 시설공사 비리에 관련된 사람들에 대해 중징계를 요구했다"며 "관련자를 검찰에 고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실제 KAIST 대학원생들은 연구인건비에 대한 불만이 컸던 것으로 나타났다. KAIST 대학원 총학생회가 지난해 9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20.3%가 연구인건비를 받은 적이 없다고 답했다. 47.8%는 월 40만원 미만의 인건비를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비가 원래 목적 이외의 용도나 사적으로 사용된다고 대답한 대학원생도 19.2%에 달했다. 일부 대학원생은 "자료준비부터 강의까지 학생들에게 떠넘기고 강의료를 독식하는 교수도 있다"고 대답했다.

일각에서는 교과부가 서 총장에 대한 해임안을 추진할 것이라는 분석도 내놓는다. 하지만 교과부는 "해임안을 이사회 안건으로 상정하는 것에 대해 검토한 적이 없다"고 부인했다.

학생에 이어 교수까지 자살하면서 KAIST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이 커지고 있다. KAIST는 박 교수의 자살 소식이 전해지자 보직교수들을 긴급 소집,비상 대책 회의를 열었다. KAIST 안팎에서는 서남표 총장의 퇴진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거세지고 있다. KAIST 교수협의회장을 지낸 한상근 수학과 교수는 이날 게시판에 글을 올려 "서 총장이 사퇴하는 것이 모두를 위해 좋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KAIST는 11,12일 이틀간 학과별로 수업을 중단한 뒤 이번 사태에 대한 여론을 수렴하기로 했다. 12일 오후에는 지난 8일에 이어 서 총장과 학생 간 토론회를 다시 열기로 했으나 박 교수의 자살로 상황은 한 치 앞을 내다보기 힘들게 됐다. KAIST는 학생과 교수들의 의견을 들은 뒤 오는 15일 긴급 임시이사회를 열 것으로 알려졌지만 일정이 앞당겨질 수도 있다. 서 총장이 스스로 퇴진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건호/이해성 기자 leek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