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 경북 왜관에 있는 작은 빵 공장.오븐은커녕 가스도 없던 시절,빵 공장에선 17세 소년이 연탄불을 피워 빵을 굽고 있었다. 제과보조원이었던 그는 1982년 서울 서초동에 19㎡(6평)짜리 과자점을 냈고,2007년엔 '천연발효' 기술을 인정받아 '제과 명장(名匠)'이 됐다. 지난달 제10대 대한민국 명장회 회장으로 취임한 제빵 경력 41년의 김영모 김영모과자점 대표(58) 이야기다.

11일 서울 경운동 명장회 사무실에서 만난 김 회장은 말콤 글래드웰의 책 '아웃라이어' 이야기를 꺼냈다.

그는 "성공한 사람들은 자신이 속한 분야에 하루 3시간 이상 10년을 투자한다는 '1만시간의 법칙'이 아웃라이어에 담겨 있다"며 "명장이 되기 위해서는 그보다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대부분의 명장이 한 분야에서 40~50년 일한 사람들이라는 설명이다.

명장은 한 직종에 15년 이상 종사하면서 기술 발전에 공헌한 기능인을 말한다. 고용노동부는 매년 금속 도자기 목공예 등 공예분야와 기계 조선 건축 등 산업분야,제과 미용 세탁 등 서비스분야 267개 직종에서 명장을 선정한다. 현재 고점례(한복) 박병일(자동차) 등 496명이 명장으로 등록돼 있다.

김 회장은 한국의 대표 명장답게 "명장들의 사회적 위상을 높이고 이들이 갖고 있는 국보급 지식과 기술을 다음 세대에 적극적으로 전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강조했다. 그는 "수십년 동안 현장 경험을 통해 얻은 지식과 기술을 이론으로만 전달하기 힘들다"며 "명장들이 직접 현장에서 바로 쓸 수 있는 기술을 후배들에게 가르치도록 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가 최근 전국 학교들과 상호교류 양해각서(MOU)를 맺는 데 공을 들이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지난 5일에는 호텔제과 분야로 유명한 혜전대(충남 홍성)와 MOU를 체결했다. 21개 마이스터 고교 교장협의회와도 협약을 맺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명장들이 후진양성에 나설 수 있는 기반을 닦기 위해서다.

명장뿐 아니라 기능직 전체에 대한 사회적 위상을 끌어올려야 한다는 게 김 회장의 지론이다. 사회 전체가 기술과 기능에 대해 더 큰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머리에 아무리 좋은 생각이 있어도 손으로 빚어낼 수 없으면 현실화될 수 없다"며 "기능인들은 최전선에서 우리 생활을 풍요롭게 하는 데 기여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버터 없이 설탕 없이 몸에 좋은데 맛은 더 좋은 빵'으로 유명한 그가 평생 외길을 걸을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일까. 물질적 풍요는 아니다. 직원 200여명을 두고 연 100억원 이상 매출을 올리고 있지만,직원들에게 하루 매출이 얼마냐고 물은 적이 없다. 대신 손님이 어떤 제품에 관심을 보였는지,무엇을 필요로 하는지를 더 중시한다.

제과 명장의 손은 여전히 깨끗하고,손톱은 깔끔히 정돈돼 있었다. 김 회장은 "오로지 한길을 걷기 위해서는 손님들이 느끼는 기쁨보다 만든 사람이 더 기뻐야 한다"며 "그런 사명감이 있기에 평생 제과 일을 해왔고 이는 모든 명장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말했다. 손님들을 기쁘게 하는 데서 느끼는 기쁨.그가 밀가루 반죽을 손에서 놓지 않는 이유다.

조미현 기자 mwis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