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6년 마스터스 골프대회 1라운드에서 '백상어' 그렉 노먼은 9언더파를 몰아치며 다른 선수들을 압도했다. 최종 라운드를 시작할 때만 해도 2위권에 6타나 앞서 있었다. 그러나 닉 팔도가 추격해오자 흔들리기 시작했다. 아멘코너(오거스타GC 11~13번홀)에서 선두를 내주며 급격하게 무너졌다. 당대 최고의 골퍼로 꼽혔던 노먼은 결국 '아마추어 스코어'인 78타를 치며 팔도에게 우승컵을 넘겨주고 말았다. 이후 노먼은 그린 재킷을 한번도 걸쳐보지 못한 채 현역 생활을 접었다.

1999년 브리티시오픈에선 더 뼈아픈 장면이 연출됐다. 프랑스의 장 반 드 발드는 최종라운드 마지막 홀을 남겨 놓고 2위에 3타나 앞서 있었다. 더블보기만 해도 우승할 수 있는 상황이었지만 개울과 러프를 전전한 끝에 트리플보기로 홀을 마쳤다. 맥이 풀린 발드는 연장전에서 폴 로리에게 무릎을 꿇으면서 메이저대회 최악의 역전패를 기록했다.

1966년 US오픈은 아놀드 파머에게 불명예를 안긴 대회였다. 7타차 선두로 최종 라운드에 나섰으나 잇단 더블보기 끝에 빌리 캐스퍼에게 동타를 허용했고,연장전에서 역전패를 당했다. "아마추어는 5달러의 스윙으로 100달러의 샷을 하려고 한다. 진짜 프로는 극도로 긴장할 때 좋은 플레이를 하지만 아마추어는 망가진다"는 말을 남겼으나 정작 자신도 긴장감을 극복하지 못한 셈이다. 파머는 그 후 메이저대회에서 우승을 하지 못했다.

최고의 선수도 평정심을 잃으면 혹독한 대가를 치른다는 걸 보여주는 사례들이다. 아마추어 골퍼들은 더 말할 것도 없다. 잘 나가다가도 동반자의 '스윙 좋아졌다'는 칭찬 한마디에 무너지기 일쑤다. '좋아진 스윙'을 유감없이 보여주려는 생각에 사로잡혀 플레이를 망쳐버린다.

올해 마스터스에선 북아일랜드의 '샛별' 로리 매킬로이가 희생자가 됐다. 2위권에 4타 앞선 채 최종 라운드에 나선 매킬로이는 전반 9홀까지 무난하게 끌고 갔다. 그러나 10번홀에서 왼쪽으로 감긴 티샷을 무리하게 처리하려다 트리플 보기를 범하고 말았다. 스윙이 빨라지고 실수가 이어지면서 이날 8오버파 80타를 적어냈다. 성적은 공동 15위.평정심이 흔들리면서 호된 대가를 지불한 것이다.

비단 골프뿐만이 아니다. 무슨 일이든 잘 나갈 때일수록 조심해야 한다. 과한 욕심으로 평정심을 잃으면 화를 부르게 마련이다.

이정환 논설위원 jh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