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밉다고 기업 활동까지 무조건 막아서는 곤란하다. 정부가 정경(政經)분리 원칙에 따라 유연하게 판단해야 한다. "

개성공단 입주 기업인과 북한 전문가들은 지난해 3월 천안함 폭침 사태 이후 1년 넘게 계속되고 있는 정부의 남북경협 중단 조치에 대해 이렇게 의견을 모았다. 한국경제신문과 현대경제연구원이 '북한경제 글로벌포럼 2011' 포스트 세션으로 11일 마련한 전문가 좌담회에서다.

대부분의 참석자들은 "남북 경협은 북한에 경제적 실리를 주면서도 북한 체제를 서서히 전환시키는 방향으로 추진돼야 한다"며 "그런 점에서 경협은 일종의 공공재와 같다"고 강조했다. 김주현 현대경제연구원장의 사회로 진행된 좌담회에는 이봉조 경남대 교수(전 통일부 차관),김영윤 남북물류포럼 회장(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문창섭 개성공단기업협의회 명예회장(삼덕통상 사장),평양에서 의류 임가공을 하는 동방영만 미래통상 대표가 참석했다.

▼김주현 원장=북한이 돌연 현대그룹의 금강산 관광사업 독점권을 취소한다고 통보,향후 남북경협이 더욱 경색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커졌습니다.

▼이봉조 전 차관=북한이 '금강산 관광사업 재개를 더 늦춰서는 안 된다'는 여론을 조성하기 위해 독점권 취소라는 카드를 던진 것으로 보입니다. 꽃이 피고 금강산이 가장 아름다운 때가 오는데,그만큼 북한 입장에선 관광사업을 통한 외화벌이가 급하다는 방증인 셈이죠.

▼김영윤 회장=북한 입장에선 남북경협 중단 등 경색 국면을 타개할 우리 쪽의 특별한 대책이 안나오니까 우리 정부를 다시 압박하기 위해 나름의 충격요법을 시도한 것 같습니다. '애원'이 담겨 있다고 봅니다. 겉으론 우리와 상종 안 하겠다고 하지만 식량난과 외화 부족 등 북한이 처한 현실을 좀 봐달라는 간절한 메시지 같습니다. 이 대목에서 우리 정부가 짚어봐야 할 게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대북 정책을 장기적으로 어떻게 끌고나가고,어떤 방식으로 북한 변화를 유도할 것인지를 제시하지 못하는 것 같아 아쉽습니다.

▼동방영만 대표=북한은 이제 남쪽에 아쉬울 게 없다는 분위기로 보입니다. 중국,유럽 쪽과 다양한 경제협력이 이뤄지고 있습니다. 금강산까지 교류를 끊겠다는 것은 북한이 우리에 대한 기대를 버렸다는 메시지로 읽을 수도 있다고 봅니다.

▼김 원장=남북경협과 북한 경제특구 운영은 북한의 개혁 개방과 연관 있는 문제인데,앞으로 어떻게 진행될 것 같습니까.

▼이 전 차관=경제특구 주체 문제를 생각해야 합니다. 북한이 인프라와 경제적 능력이 없는 상태에서 경제특구를 운영한다는 게 현실성이 있을까요. 남북 특수관계 속에서만 가능합니다. 북한이 러시아 및 중국과 경협을 추진할 때도 한국은 늘 변수입니다.

▼김 회장=북한은 나진 선봉을 통해 두만강 및 압록강 쪽으로 개발을 유인하려고 했지만 잘 안됐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사정이 다릅니다. 중국이 관심을 보이고 있어요. 중국은 북한이나 러시아를 통해 동북 3성의 물자를 실어나르려는 계산입니다. 북한의 경제특구가 중국과 연계될 때 많은 발전 가능성이 있다고 봅니다.


▼김 원장=북 · 중 간 경협 확대는 어떻게 돼가고 있습니까.

▼김 회장=북한 무역의 중국 의존도는 80%가 넘습니다. 이 중 63%가 자원과 관련됐죠.북한 경제는 핵심 분야에서 중국에 대한 의존도가 상당히 높습니다. 이 같은 경향은 '5 · 24 조치'(천안함 사태 이후 북한에 대한 모든 남북경협을 중단한다는 정부 조치) 이후 더 심해졌습니다. 그 전까지만 해도 남북 모두에 이득이 되는 분야가 의류 봉제 등의 임가공 사업이었습니다. 이젠 그 빈 자리를 중국이 파고들고 있고,유럽 국가들까지도 반사이익을 보고 있습니다.

▼동방 대표=기업인 입장에서 봐도 그렇습니다. 이제 좀 자리잡았다 싶었는데 5 · 24 조치가 나온 이후 남측 기업인들은 얼떨결에 밀려났습니다. 임가공한 물건의 반송이 안 돼 의류 몇 천장을 불태워야 했습니다. 우리 기업들은 발만 동동 구르고 있어요. 이런 와중에 중국뿐 아니라 동유럽 쪽 국가들이 임가공 가격을 더 쳐주겠다며 밀고 들어오고 있습니다. 지금 상황이라면 남북 경협이 재개된다고 하더라고 단가 측면에서 우리가 밀립니다.

▼김 원장=기업들의 직접적인 피해도 적지 않을텐데요.

▼동방 대표='5 · 24 조치' 이후 생산기지를 찾지 못해서 헤맸습니다. 기업들은 베트남 캄보디아 파키스탄 등을 떠돌았습니다. 통일부는 기존에 북한에서 생산한 제품에 대해 포기각서를 요구했습니다. 울며 겨자 먹기로 다들 각서를 썼습니다. 그동안 북한에서 만들고도 못 들여온 의류가 48만장에 이릅니다. 피해는 고스란히 우리 기업들한테 돌아옵니다. 북한에 들어가 있는 우리 기업들의 원 · 부자재는 상당합니다. 공장 가동은 올스톱됐고,중소기업 사장 중에 신용불량자가 된 사례도 있어요. 평양과 신의주 쪽에서 위탁가공을 하는 남쪽 회사는 400여개나 됩니다.

▼김 원장=그럼 우리 정부는 어떻게 해야 한다고 봅니까.

▼문창섭 회장=경협 중단 여파는 실로 엄청납니다. 정부가 북한에 벌을 줄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제재에는 효율성이 우선돼야 합니다. 북한 정권이 남측 기업에 일하지 말라고 압박을 준 일은 없었습니다. 남북관계가 힘들더라도 정경분리 기조는 일관되게 유지해야 합니다.

▼동방 대표=저희들은 '민간외교관'이라고 자부합니다. 북한에서 기업활동을 하면서 수많은 부가가치를 창출하고 있거든요. 북한이 밉다고 기업들까지 무조건 막을 게 아니라,정부가 정경분리 원칙에 의거해 유연하게 판단해줬으면 좋겠습니다.

▼이 전 차관=남북관계는 지향점을 잃고 표류 중입니다. 남북경협이 부진한 것은 경협 자체의 문제가 아니라 경협 중단을 북한 잘못에 대한 '페널티'로 삼는 데서 비롯됩니다. 북측에 경제적 실리를 주면서도 북한을 바꿀 수 있도록 접근해야 합니다. 당국이 아닌 북한 주민을 서서히 변화시켜 나가야 합니다. 북한체제의 '부식(腐蝕)화'를 추구하자는 얘기죠.남북경협은 '공공재'입니다. 정부가 보다 현명하게 판단했으면 합니다. 정부가 할 수 없는 일을 민간이 제대로 할 수 있도록 돕는 게 당국의 역할입니다.

▼김 원장=경협과 교류 등이 한반도 긴장을 완화해 통일로 가는 데 얼마나 기여하고 있다고 봅니까.

▼문 회장=우리 기업들이 2004~2005년 북한에 처음 진출했을 때 북 근로자들에게 간식으로 초코파이를 줬습니다. 처음엔 남쪽 거라고 하니깐 안 믿더군요. 당국도 퇴근시 소지품 검사를 철저히 해서 못 가져가게 했죠.지금은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하루에 초코파이를 1인당 7개씩 주는 회사들이 많아졌습니다. 북한 근로자들도 초코파이 맛에 눈을 떴죠.지급받은 초코파이를 집으로 다 가져갑니다. 식구들이 밥을 굶고 있거든요. 근로자들도 점심만 먹고 일합니다. 현재 북한 근로자가 5만명 정도인데,이들이 7개씩 집에 가져간다고 가정하면 하루 35만개나 됩니다. 초코파이 비닐봉지가 북한에 퍼지고 있습니다. 자본주의에 서서히 젖어들고 있는 거죠.우리 기업들이 북한 주민들의 배고픔을 해결해주고 있어요. 이런 게 통일에 기여하는 방법이 아닐까요. 중동에서 '재스민 혁명'이 일고 있듯이,한반도에서는 '초코파이 혁명'이 싹트고 있습니다.

▼동방 대표=북한 주민의 태도 변화는 저도 많이 느낍니다. 7년 전 북한에 처음 갔을 때는 평양 주민들이 우리에게 '남조선 사람'이라며 대놓고 눈을 흘겼어요. 지금은 우리에게 먼저 인사합니다. 한국에 대해서도 많이 알고 있습니다. 우리 같은 기업들이 현지에 들어가서 열심히 장사하다 보면 통일의 분위기는 자연스럽게 퍼질 것입니다.

▼이 전 차관=독일이 우리보다 먼저 통일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동독과 서독 간 경협 기반이 굳건했기 때문입니다. 정권이 바뀌어도 경협 정책은 일관되게 유지했거든요.

▼김 원장=내년은 북한이 강성대국 건설 목표로 천명한 원년입니다.

▼이 전 차관=강성대국 건설 목표는 10년 전에 수립돼 이제 8개월 남았습니다. 북한은 얼마 전부터 이에 대해 강성대국의 '문을 여는 것'이라고 달리 표현합니다. 문을 연다는 것은 '협중통미(協中通美)'라고 생각해요. 중국과 협력하고 미국과 대화하면서 남북관계를 풀어나갈 것으로 보입니다. 이 작업은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과 후계자 김정은의 과제죠.강성대국 건설 시한은 의미가 없어졌습니다.

▼문 회장=강성대국 목표는 요원하다고 봅니다. 무엇보다 먹고 사는 문제가 여전히 심각해요. 개성에서 사업을 한 지 5년이 넘었는데,약 3년 전부터 북측 근로자들이 요구하는 식사량이 많아졌어요. 라면과 떡국,만두를 원하고 만두 개수도 늘었습니다. 1주일에 두 번씩 고깃국을 끓여 주는데 이들은 국물만 떠 먹고 고기는 따로 건져놓더군요. 맛이 없어서 그런 줄 알았는데 가족들 주려고 싸가는 것이었습니다.

정리=김정은/정성택 기자 likesmil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