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느릿감을 구하려면 나일론 공장으로 가라." 화학섬유가 전성기를 구가하던 1950~70년대 유행하던 말이다. 1958년 한국나이롱(현 코오롱)이 100명 남짓 뽑았던 대구공장 여종업원 모집엔 서울과 호남 등 전국 각지에서 1900여명이 응모해 화제를 뿌렸다.

이른바 '화섬 3인방'이라 불리는 효성,코오롱,삼양사가 '화학의 시대'를 맞아 살아나고 있다. 소재를 비롯한 화학산업이 각광받으면서 여기에 기반을 둔 3개사가 옛 명성을 찾기 위해 다시 뛰고 있다. 산업자재,필름,섬유 등 석유화학 부문이 부활의 밑바탕이다.

◆재계 순위 5위 안에 들던 옛 시절

화섬 3인방이라 불리는 효성,코오롱,삼양사는 한때 국내에서 손꼽히는 대기업이었다. 동양나이론(현 효성)의 울산공장엔 날마다 퇴근 시간이면 원사를 구매하려는 업자들의 줄이 길게 늘어섰다. 창립 4년 만인 1971년엔 국내 민간 기업 가운데 최초로 기술 연구소를 설립할 정도로 사세도 컸다. 1980년대엔 재계 순위 5위까지 올랐다.

국내 최대 매출을 기록했던 한국나이롱이 1975년 기업을 공개할 때 청약 첫날 새벽 4시부터 증권사와 은행 창구는 투자자들로 장사진을 이뤘다. 1970년 국내 기업 최초로 여자농구단을 창설하는 등 1970년대엔 세 손가락 안에 드는 그룹이었다.

삼양사는 1950년대 국내 최대 기업으로 1969년 전주에 대규모 폴리에스터 공장을 설립하는 등 설탕과 화섬을 바탕으로 이른바 '잘나간' 기업이었다.

◆화학 실적 급증이 변화의 힘

1950~80년대 국내 대표 기업이었던 이들은 전자와 자동차 등 '신사업'에 제때 진출하지 못한 결과,재계 순위에서 크게 뒤로 밀렸다.

요즘 들어 상황이 바뀌고 있다. 이들 그룹의 기반인 화학산업이 다시 주목 받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상장사 가운데 수출과 국내 판매가 가장 많이 늘어난 업종으로 화학이 꼽힐 정도다.

각종 필름,원사,엔지니어링플라스틱(EP),타이어코드 등 화학 부문에서 3사의 매출과 이익이 급증하고 있다. 효성은 2008년 매출 2조8551억원,영업이익 2059억원이던 이 부문 실적이 지난해엔 각각 3조5061억원,4012억원으로 늘었다.

코오롱은 주력 계열사인 코오롱인더스트리가 사상 최대 실적을 거두며 주가가 급등하는 등 주목받고 있다. 삼양사는 원자재값 상승으로 식품부문이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화학 부문 실적이 크게 늘어나며 안전판 역할을 했다.


◆신사업 바탕 해외 진출 활발

신호탄은 효성이 먼저 끊었다는 게 재계의 일반적인 평가다. 타이어코드 시장에 진출한 효성은 세계 시장의 35%를 넘게 확보하며 세계 1위 기업에 올라섰다. 스판덱스도 자체 브랜드로 미국 듀폰을 제치고 시장 점유율 25%를 웃돌고 있다. LCD(액정표시장치)용 TAC(트리아세틸셀룰로스)필름 등의 전자재료도 일본 후지와 코니카미놀타 등을 뒤쫓는다. 풍력,스마트그리드 등에 대한 투자도 활발하다.

코오롱은 지주사 전환을 완료하며 신사업 진출에 힘을 내고 있다. 코오롱건설은 지난달 29일 베트남에서 하수처리시설 공사 착공식을 갖는 등 그룹 신성장 동력인 수처리 사업에 속도를 내고 있다. 코오롱아이넷은 지난해 한국가스공사와 공동으로 우즈베키스탄 차량용 압축천연가스(CNG) 사업에 진출한 데 이어 카자흐스탄 등으로 영역을 확대할 태세다.

삼양사는 지난달 김윤 회장과 김원 부회장,김량 부회장으로 이뤄진 최고경영회의를 신설하고,경기도 판교에 의약 · 바이오 R&D(연구 · 개발) 센터를 세우기로 하는 등 사업 다각화를 꾀하고 있다. 지난달엔 헝가리에 EP공장도 세웠다.

조재희/김동욱 기자 joyja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