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70년대 하와이 카우아이섬은 주민 대다수가 범죄자나 알코올 중독자 혹은 정신질환자였던 곳이다. 미국의 소아과 · 정신과 의사,사회복지사,심리학자 등은 1955년 이 섬에서 출생한 신생아 833명이 18세가 될 때까지 추적하는 대규모 연구에 착수했다. 사회과학 역사상 가장 야심찬 프로젝트 중 하나로 꼽히는 하와이 카우아이섬 종단 연구다.

40여년간 이 연구 분석을 주도한 심리학자 에미 워너는 뜻밖의 사실을 발견했다. 833명 중에서도 특히 더 열악한 환경에서 자란 201명의 삶을 살폈더니 3분의 1인 72명은 출생과 환경의 영향을 받지 않고 훌륭하게 성장했던 것이다. 놀라운 결과를 만든 비밀은 단순했다. 어떤 상황에서도 그를 무조건 믿어주고 편이 돼 주고 응원해 준 사람이 한 사람만 있으면 아무리 끔찍한 일도 견디고 밝고 건강한 사회인으로 클 수 있었다는 게 그것이다.

학생들의 잇따른 자살로 KAIST의 교육 시스템이 도마에 올랐다. 징벌적 수업료제 같은 무한경쟁 교육이 학생들을 죽음으로 내몰았다는 비판이 나오는 가운데 그 정도 경쟁도 견디지 못하면서 어떻게 최고의 교육기관에 다닐 수 있겠는가,고등학교 때까지 공부 잘해 입학했다고 해서 무조건 졸업시킬 수는 없지 않느냐는 주장도 만만치 않다.

서남표 총장을 비롯한 KAIST 쪽의 변은 분명하다. "모두가 만족하는 제도는 없다,세상 무엇도 공짜로 얻을 수 있는 건 없다,궁극적 해결책은 각자의 마음과 자세에 달렸다,공부 안하는 학생을 위해 세금을 쓰는 건 불합리하다. 90% 이상은 잘 이겨낸다,10% 때문에 개혁을 포기할 수는 없다. 미국도 입학사정관제로 뽑은 학생의 중도 탈락률이 20~30%에 이른다" 등.실제 매사추세츠공대(MIT) 학생 자살률은 같은 연령대 미국 젊은이 평균의 2배라고도 한다.

경쟁은 불가피하다. 어느 대학 출신이냐가 평생을 따라다니다시피 하는,학벌에 따라 상대의 눈빛이 달라지는 한국에선 더하다. 경쟁 철폐를 외치는 교육감과 정치인 상당수가 같은 대학 졸업생도 학과별 커트라인을 따져 상대하려 드는 서울대 출신이고, 제 자식은 외국 유학에 석 · 박사 학위까지 남보다 나은 스펙 갖춰주기에 여념이 없는 게 현실이다.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라고 말하는 이들 중 누구도 그 말에 책임지지 않는다. 살다 보면 기껏 기다렸는데 내 바로 앞에서 줄이 끊어지는 일도 부지기수다.

경쟁이 의욕을 만드는 것도 사실이다. 이겨야 한다는 절박함이 학업에 매진하게 하고 승리의 기쁨은 새로운 의욕을 낳을 수도 있다. 그러나 사람은 다 다르다. 머리 좋은 사람에겐 질책,그렇지 않은 사람에겐 칭찬이 약이라는 건 알려진 내용이다. 외로움을 발전의 동력으로 삼는 사람도 있고,격려와 칭찬에 젖먹던 힘까지 내보는 사람도 있다.

정 힘에 부치면 그만두고 다른 길을 찾을 수 있어야 한다. 죽는 것밖에 방법이 없다고 여기게 만드는 건 너무 끔찍하다. 카우아이섬의 비밀은 시사하는 바 크다. 공부 잘하는 아이일수록 부모의 기대에 어긋날까 두려워하기 쉽다. 그러니 평소 '공부를 잘해서가 아니라 무조건 사랑한다,나는 항상 네 편이다'고 말해줘야 한다. 그래야 말 못하고 혼자 끙끙 앓는 일을 막을 수 있다. '다 너를 위한 건데 왜 내맘을 몰라주냐'는 바보같은 짓이다. 부모가 자식 마음을 모르듯 자식도 부모 마음을 모르기 때문이다.

교수와 대학 평가를 연구 위주로 하는 것도 재고돼야 마땅하다. 대학의 본령은 교육이다. 세계적 저널에 논문을 내는 연구 교수도 필요하지만 학생들의 고민에 귀 기울여 줄 교수도 있어야 한다. '때는 이때다'라는 식으로 아이들을 경쟁에서 벗어나게 해 줘야 한다고 주장하는 일부 교수의 경우 평소 그들의 얘기를 얼마나 들어줬는지부터 생각할 일이다. '대학의 사명은 교육,연구,사회봉사로 분리된 것이 아니라 교육과 연구를 통한 사회공헌'이라는 김영길 한국대학교육협의회 회장의 말도 다시 돌아보고.

박성희 <수석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