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하 미래에셋증권 전략기획본부 이사(42)는 내년 초 선보일 '한국형 헤지펀드'설계를 책임지고 있다. 회사의 중장기 신사업프로젝트도 도맡고 있는 금융 전문가다. 하지만 그는 공학도 출신이다. 광주과학고를 2년 만에 조기졸업하고 KAIST(생산공학과)를 나왔다.

공학도답게 KAIST를 졸업한 뒤 기아자동차에서 6년 동안 자동차 엔진을 주물렀다. 금융업으로 자리를 옮긴 건 외환위기 직후인 1999년 말.당시 용어도 생소한 '금융공학'쪽에 인생을 걸기로 했다.

은행 증권사 등에서 내공을 쌓은 뒤 2004년 미래에셋그룹이 결성한 헤지펀드 운용팀에 합류했다.

금융에 공학이론을 접목하는 글로벌 금융시장의 트렌드에 따라 그의 회사 내 입지도 갈수록 탄탄해지고 있다.

성적비관과 불안한 미래 등으로 KAIST 재학생 및 교수의 자살이 잇따르고 있는 것과 대조적으로 '금융1번지' 여의도에서는 이공계 출신들이 성공시대를 열어가고 있다. 구원회 미래에셋증권 상무(KAIST),장원재 삼성증권 운용사업부장(서울대 수학과),김두남 삼성자산운용 ETF운용2팀장(KAIST) 등이 대표적이다. 전산파트에 주로 배치돼 금융실무에서 소외됐던 예전과는 전혀 딴판이다.

리서치센터,장외파생상품의 설계운용,리스크관리 파트 등 핵심 부서에서 이공계 출신들이 경제 경영 등 인문계 출신과 치열한 실적 경쟁을 벌이고 있다.

최근 몇 년 사이 KAIST 포항공대 서울대 등 이른바 일류대학 이공계 출신들이 여의도에 넘쳐나고 있다. 주식중개(브로커리지)업 비중이 줄고 새로운 금융상품 개발 등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 개발이 활발해 지면서 증권사들이 이공계 인력수요를 늘리고 있기 때문이다.

미래에셋증권은 지난해 공채 및 특채 인력 92명의 31.5%인 29명을 이공계 출신으로 채웠다. 삼성증권 대우증권 한국투자증권 삼성자산운용 등도 최근 몇 년간 이공계 인재 확보경쟁을 벌이며 전체 직원 중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꾸준히 높아지고 있다. 지난 3월 말 현재 삼성증권의 이공계 출신은 전체의 12.9%다.

KAIST 출신의 한 증권사 임원은 "과학고와 달리 KAIST는 따로 동문회 등을 하지 않아 정확한 현황 파악이 되지 않는다"며 "다만 여의도에서 증권밥을 먹고 있는 KAIST 출신이 100명은 넘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헤지펀드 도입을 앞두고 현재 증권사 간 퀀트(계량분석)전문가의 스카우트 경쟁이 벌어지고 있어 앞으로 여의도의 이공계 출신은 더욱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퀀트는 전 세계 선물 현물시장의 가격추이를 계량적으로 분석하고,컴퓨터시스템을 통해 투자하는 전문가를 말한다.

서울대 공대 출신의 한 증권사 임원은 "세계 금융트렌드가 주식을 쌀 때 사서 비쌀 때 파는 '밸류에이션'접근에서 탈피해 과학적 · 공학적 접근방식으로 바뀌고 있다"며 "세계 유수의 헤지펀드 등은 이공대 출신을 중점적으로 뽑고 있다"고 말했다. 골드만삭스 관계자도 "뉴욕 본사에서 파생상품을 개발하는 사람들은 이공계 출신"이라며 "이들의 몸값도 갈수록 높아지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이공계 출신들의 증권가 '러시'를 경계하는 목소리도 있다. 한 증권사 임원은 "국가의 지원을 받아 공부한 우수 인재들이 이공계와 상관 없는 일로 몰리는 것은 국가경쟁력 제고 차원에서는 문제"라고 지적했다.

손성태/노경목 기자 mrhan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