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 Biz School] '열심히'가 아니라 '스마트 하게'…누구나 '1인 기업' 처럼 일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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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t's Master SmartWork
지난해 11월 열린 '글로벌 인재포럼 2010'에 연사로 참여한 캐럴라인 워터스는 영국 BT에서 스마트워크(BT에서는 Agile Working으로 부른다)를 총괄하는 책임자였다. 과연 그녀는 어떤 식으로 일할까 궁금했다. "당신의 1주일 근무 형태를 소개해 달라"고 부탁하자 기다렸다는 듯 이어진 그녀의 대답은 이랬다. "이틀은 오피스(사무실),또 이틀은 홈오피스(재택),그리고 하루는 '커피스'에서 일해요!"
커피스는 커피(coffee)와 오피스(office)의 합성어다. 쉽게 얘기해 1주일에 하루는 회사도 집도 아닌 시내 커피숍에서 편안하게 일한다는 얘기였다. 예상치 못한 그녀의 답변에서 일하는 방식의 근본적인 변화가 느껴졌다. 일은 이제 장소의 문제가 아니다.
집에서 일하든,회사에서 일하든,아니면 길을 가다가 커피숍에서 일하든 상관없다. 시간도 별로 상관이 없어졌다. 집에서 아침에 일을 다 끝내고 오후에 낮잠을 자도 누가 알 길이 없는 것 아닌가. 중요한 것은 일의 과정이 아니라 결과다. 그 결과에 충실하기 위해서는 과정에서 자기 스스로 베스트라고 생각하는 결과를 내면 된다. 그것이 새로운 시대의 일하는 방식이다. 우리 사회도 이미 그렇게 전진하고 있다.
#일 시키는 방식도 바꿔라
이렇게 보면 문제는 오히려 '구세대'다. 상사들이 스마트워크에 적응하지 못해 생기는 일이 훨씬 많다. 직원들이 현장에서 휴대폰 이메일로 보고하는데 본인은 어떻게든 인쇄물로 받아야 한다면,일은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늘어난다. 의사결정의 속도도 더뎌질 수밖에 없다. 한 조직의 속도는 가장 늦은 사람의 속도이기 때문이다.
최근 영국에서 실시된 업무형태 조사인 '젠슬러 리포트(Gensler Report)'에 따르면 현재 지식인들의 하루 업무 시간 가운데 자기 일에 집중해 쓰는 경우는 59%에 불과했다. 나머지는 다른 부서와 협업을 하는 데 22%의 시간을 쓰고 동료들과 잡담하며 교제하는 시간이 6%,자기계발 등 학습에 쓰는 시간이 4%였다.
이것이 평균 비율이지만 좀 더 구체적으로 보면 보통의 회사일수록 직원들이 자기 일에 쓰는 시간이 훨씬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평균 9%포인트 높았다. 우량 회사로 갈수록 기타 부문 즉 협업,학습,교제 시간이 훨씬 많은 것으로 조사됐다. 이 숫자들은 평균적인 회사에 비해 두 배 이상 높았다.
회사마다 차이가 있긴 하지만 이 보고서가 주는 의미는 이미 지식노동자들이 혼자 일하는 시간은 하루의 3분의 2가 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그런 만큼 혼자 일하는 데 중점을 둔 기존의 칸막이 사무실을 계속 유지하는 것 자체가 현실을 반명하지 못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우량 회사일수록 혼자 일하는 공간에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협업을 할 수 있는 공간을 따로 두고 있고,개인의 학습과 사내 교제를 위한 공간도 훨씬 더 많이 배치하고 있다는 결과가 나왔다. 일하는 방식도 바꿔야 하지만 직원들에게 일을 시키는 방식도 바뀌어야 한다는 얘기다.
#사라져야 할 대면(對面) 문화
BT의 조사에 따르면 스마트워크를 가로막는 대표적인 걸림돌이 대면주의(presenteeism)다. 서로 보지 않고도 믿을 수 있는 신뢰 기반이 없으면 직원이 밖에서 제대로 일하는지를 믿지 못해 일을 시키지 못하는 것이다. 또 직원들이 느끼는 고독감과 격리감도 스마트워크를 방해하는 요인이다. 이 밖에 보안문제나 건강,안전문제 등도 스마트워크를 가로막는 장벽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과연 스마트워크가 될 것인가 하는 회의주의,노조 등을 중심으로 하는 적극적인 저항도 심각하게 고려해야 할 요소로 꼽혔다.
이 가운데 가장 큰 문제는 역시 대면주의다. 직접 보지 않으면 지시를 제대로 이해하는지,또 지시한 대로 제대로 실행하는지를 알 수 없고 그런 만큼 또 다른 감시체계가 필요하다고 믿는 시각이다. 이런 관행은 서구에서도 마찬가지여서 화상회의가 잘 이뤄지지 않고 재택근무를 방해하는 요인으로 여전히 작용하고 있다.
대면주의 문화가 꼭 상사의 문제인 것만은 아니다. 오히려 직원들 사이에서도 나쁜 관행으로 남아 있다. 예를 들어 재택근무를 하는 경우 지금 상사의 상태를 알 길이 없다. 휴가 청원을 내야 하는데 평소 같으면 상사가 기분 좋아할 때 슬쩍 가서 낼 수도 있는 것을,집에 있으면 그걸 알 도리가 없는 것이다. 한창 기분 나쁠 때 전화했다가 야단을 맞아 휴가를 못가는 경우가 벌어지기도 하는 것이다. 이런 일은 지방 근무를 하는 공직자들이 일이 없어도 자주 서울에 오는 이유와도 맥을 같이한다. 인사철이나 조직개편 시즌 같은 중요한 기간에는 꼭 얼굴을 보이려고 하는 대면주의 문화가 아랫사람들에게도 있는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스마트워크가 결국 조직에도 도움이 되고 개인에게도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진행돼야 한다는 점이다. 과정에 대해 서로 신뢰하고 일을 마친 결과로만 말하겠다는 의지를 서로가 가져야 한다. 이런 믿음과 신뢰가 전제되지 않고서는 서로 얼굴을 보지 않고 유연하게 일하는 스마트워크는 불가능하다.
#다시 일의 주인으로
신뢰와 더불어 조직 경쟁력에서 중요한 것이 스스로의 일에 대해 자부심(pride)을 갖는 것이다. 특히 직접 손으로,몸으로 일해야 하는 육체노동을 제외한 대부분의 지식노동이 스마트워크로 변해갈 것임을 생각하면 이런 자세는 아주 중요한 대전제다.
스마트워크가 되면 이제 더 이상 출퇴근의 의미는 사라진다. 오전 9시에 출근해서 대충 시간을 떼우다 오후 6시가 되면 마음 편하게 퇴근하는 식은 통하지 않는다. 시간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일이 중요하기 때문에 매일매일 무슨 일을 할 것이고,어떤 과정을 통해서 실행할 것이며,어떤 것을 결과물로 내놓을지를 정하고 그 정보를 공유하는 것이 매우 중요해진다. 직원들이 각자의 직무에 대해서 심각하게 고민하고 글과 문서로 표현하는 작업을 하는 과정에서 직무의 성격이 명확해진다. 이런 점에서는 오히려 더 '빡세게' 일하는 것이 스마트워크일 수도 있다.
분명한 것은 일의 주인이 다시 근로자 자신이 된다는 사실이다. 누가 시켜서 할 수 없이 하는 것이 아니라,자기가 필요해서 본인들이 알아서 일하는 시대가 되는 것이다. 각자 한 사람 한 사람이 회사가 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다시 일의 주인이 되는 시절이 우리 앞에 있다.
#이미 시작된 스마트워크
전직 기자 출신인 P씨의 요즘 생활을 보자.회사 이름은 걸어놨지만 사실은 1인 기업이고 프리랜서 강사다. 기업체 강의가 들어오면 가서 강의하고 돌아오면 된다. 출판사에서 연락이 오면 번역거리를 맡아 집에서 밤에 번역을 한다. 교육업체 몇 군데에 등록해놨기 때문에 봄이나 가을에는 제법 바쁜 편이다. 모든 연락은 휴대폰으로 받는다. 이메일로 강의 의뢰가 오면 PC방에서 이력서와 강의안을 보낸다.
출판사에서 저작 요청이 오면 호텔에서 만나 회의하고 집필에 들어가면 된다. 기업체 사보 의뢰도 심심찮은 편이다. 강의가 많이 몰릴 때면 매일같이 지방을 다녀야 하고,야밤이나 주말에 번역이나 글쓰기 작업을 한다. 출근도 없고 퇴근도 없지만 일이 없으면 휴가고,일하고 있으면 그게 직장이다.
그가 이 생활이 고달프다고 여길 때는 일이 없는 겨울이나 여름 휴가철이다. 나머지 기간에는 바빠서 그런 생각을 할 겨를도 없고 벌이가 괜찮아 그런 생각도 안 든다. PC방에서 자주 컴퓨터 작업을 하는 편이지만 나름대로는 가장 편안하게 일한다고 생각한다. 그야말로 스마트워크다. 출판사나 교육업체 같은 곳에서 보면 P씨 같은 사람이 가장 편하다. 정직원이 아니기 때문에 언제든 불러서 쓰면 되고,강의 잘 하고 글만 잘 쓰면 되는 것이다. 이미 이런 사람들과 함께 일하는 1인 출판사,1인 교육업체들이 성업 중이다.
스마트워크가 되면 직장인들이 대부분 이런 생활을 한다고 보면 된다. 점점 더 많은 사람이 자신에게 가장 편한 방식으로 일하고,더 많은 회사들이 그것을 보장해주면서 최대한의 성과를 올리도록 독려하는 체제다. 이런 체제를 빨리 정착시키기 위해 정부가 앞장서 발표한 것이 스마트워크 비전이다.
정부는 이왕에 깃발을 높이 든 만큼 각 부처와 공기업을 앞장세워 스마트워크에 더욱 관심을 갖고 체제를 바꾸도록 독려해야 한다. 기업들도 이런 사회의 변화를 읽고 스마트워크라는 새로운 트렌드를 안착시킬 수 있도록 근본적인 변화를 서둘러야 할 것이다. 그 과정에서 사회가 더욱 스마트하게 변할 것이고,그 혜택이 다시 사회로 돌아올 수 있을 것이다.
권영설 한경아카데미원장 yskwon@hankyung.com
▷연세대 철학과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와튼스쿨 MBA
▷저서=경영자를 위한 변명,심플의 시대 등
▷역서=위대한 기업을 넘어 사랑받는 기업으로,경영의 미래,피터 드러커의 리더스 윈도우,경영이란 무엇인가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