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故) 박완서 선생이 20년 가까이 살았던 아파트를 1998년 팔고 구리시 아치울에 지은 집의 외벽은 스패니시 옐로 색상이다. 마당에는 나무를 심었다. 작가는 생전에 자주 호미를 들고 마당에 꿇어앉아 잡초를 솎았다. 딸 호원숙 씨는 한때 엄마와 함께 살았던 이 집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엄마의 진정한 뜻이 무엇이었을까? 기념관이나 문학관을 하지 말라고 하신 뜻은? 어머니의 숨결이 깃든 집이 썰렁하게 되기를 원하지 않은 게 아닌가. 차가운 돌로 된 명패와 기념관보다는 따뜻하게 가족이 모여 숨을 쉬고 웃으며 이야기를 나누고 식탁을 차리고 포도주 잔을 부딪치기를 바란 게 아닌가. 새 생명이 태어나고 자라 노할머니가 무릎을 꿇고 가꾸던 잔디 위에서 걸음마를 배우고 발에 흙을 묻히기를 꿈꾸신 게 아닐까. "
지난 1월 세상을 떠난 박씨의 향기를 다시금 느낄 수 있는 책 《모든 것에 따뜻함이 숨어 있다》(웅진지식하우스)가 출간됐다. 1992년 웅진출판이 박씨의 삶과 문학을 조명한 '박완서 문학앨범'과 2002년 이 책을 다시 펴낸 '우리 시대의 소설가 박완서를 찾아서'에 이은 세 번째 개정판이다.
고인이 자신의 어린 시절과 소설가가 된 배경에 대해 쓴 산문 '나에게 소설은 무엇인가',직접 고른 자선대표작 '해산바가지''여덟 개의 모자로 남은 당신' 외에 호원숙 씨와 소설가 김영현 씨,문학평론가 김병익 권명아 씨 등의 글이 새로 담겼다. 고인의 숙명여고 시절부터 타계 직전까지 모습을 담은 사진 70여장과 곳곳에 인용된 소설 구절도 눈길을 끈다.
김영현 씨는 매 맞은 사연을 공개했다. 몇 해 전 고인과의 약속을 까맣게 잊고 친구들과 술을 마신 후 귀가했는데 고인이 직접 만든 살구잼을 들고 찾아왔다가 두 시간이나 기다린 끝에 헛걸음을 했다는 것이다. 그는 다음날 마른 나뭇가지를 꺾어 회초리를 한 다발 만들어 집으로 찾아가 선생에게 때려달라고 청했다. 고인은 아프지 않게 때리는 시늉을 하며 "세상 살아가는 동안 절대 정신 놓고 살지마라" "우쭐거리며 돌아다니지 마라" 등의 당부를 한 후 아침밥을 먹으러 가자고 했다.
문혜정 기자 selenm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