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창근 칼럼] 과학벨트, 잘못된 길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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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을 이해 못하면 결과도 실패
본질은 사라지고 허상에만 집착
본질은 사라지고 허상에만 집착
'과학비즈니스벨트'는 이미 실패의 길로 가고 있다. 충청 호남 영남으로 갈라진 정치권의 싸움에 청와대나 정부 모두 갈피를 못 잡고 있다. 과학벨트의 본질은 실종됐다. 과학은 없고 편협한 지역적 손익계산에 파묻힌 정치논리만 남아 있다.
겨우 중이온가속기와 기초과학연구원의 통합배치 쪽으로 가닥이 잡히기는 했지만 과연 과학벨트를 어디에 조성할 것이냐 하는 핵심의 문제가 남아있고, 당초의 연구기능 집적(集積) 구상은 한참 변질됐다. 알맹이가 아닌 껍데기에만 집착해 모두'우리 동네'만 주장한다. 물론 정부 책임이 크다. 처음 세종시 원안 수정을 위해 과학벨트를 반대급부로 던졌었지만,세종시 수정은 실패하고 과학벨트만 부메랑으로 되돌아 왔다.
과학벨트는 우리나라 기초과학의 수준을 한 단계 높여 우리 경제와 기술의 창조적 혁신을 이끄는 구심점으로 삼겠다는 국가전략이었다. 반드시 해야 할 일이다. 이를 두고 과열 유치경쟁이 벌어지는 것은,과학강국이라는 '염불'보다 예산과 뻥튀기된 기대효과로 포장된 '잿밥'에만 눈이 멀어 있는 탓이다.
정부는 2015년까지 초기에 3조5000억원이 투자되는 과학벨트가 조성 이후 20년간 236조원의 생산유발액과 약 212만명의 고용효과를 낼 것이라고 말한다. 턱도 없는 장밋빛 환상이고 과학의 본질에 대한 이해 결핍이다. 과학은 비즈니스와 다른 영역인데 그걸 뭉뚱그렸다. 자연현상에 대한 탐구의 결과인 과학적 발견과 발명이 응용기술로 이어지고 그것이 경제적 성과로 산출되는 비즈니스의 과정은 그렇게 짧은 시간 안에 간단히 이뤄질 수 없다.
과학은 돈을 쏟아부어 새로운 것을 찾아내고 만드는,대체로 '쓸데 없는 것에 대한 학문'이다. 인류 문명의 가장 획기적인 전환을 가져온 과학적 성취는 '전기(電氣)'다. 19세기 초 패러데이가 그 존재를 설명하고 몇 가지 법칙으로 효용성을 증명했을 때도 '사기(詐欺)아니냐'가 논쟁의 초점이었다. 20세기 최고의 천재 아인슈타인이 4차원 시공간(時空間)에서 질량과 에너지의 등가(等價)법칙을 설명한 방정식 E=mc²를 내놓았을 때 그걸 이해하는 사람은 없었다. 이 방정식이 우라늄이나 플루토늄의 핵분열을 이용한 핵폭탄,그리고 원자력 발전을 낳을 줄은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다.
과학은 그런 것이다. 그럼에도 과학은 돈되는 기술의 뿌리다. 기초학문인 과학이 응용기술의 진보를 촉진하는 원동력이자 기술에서 부딪치는 문제가 과학의 발전을 이끄는 구조다. 과학과 기술을 떼어 놓을 수 없고,과학의 역량이 선진강대국의 잣대인 이유이기도 하다.
지역균형발전이니,국제비즈니스의 거점 조성이니,또는 고용과 생산유발 효과가 얼마나 되느니 하는 막연한 허상(虛像)만 좇고 있는 과학벨트 입지 논쟁은 그래서 전제부터 잘못됐다. 정작 본질의 문제인 과학 그 자체를 어떻게 키울 것인지에 대한 논의가 실종된 것도 그 때문이다.
지금 가장 우선돼야 할 것은 내로라하는 과학자들이 모여 마음놓고 연구에 몰두해 자꾸 많은 발견과 발명을 이끌어 낼 수 있는 최선의 현실적 해법이 무엇인지에 논의를 집중하는 일이다. 빠듯한 돈으로 첨단의 대형 연구시설들을 설치한다면 되도록 많은 연구기관들이 함께 이용해 네트워킹과 시너지를 낼 수 있는 방안은 무엇인지,그런 설비들이 안정적으로 운용될 수 있는 인프라를 갖추기 쉬운 곳,연구인력들이 불편없이 생활하고 자식들 교육시키기 좋은 곳은 어디인지,그래서 우수한 과학자들과 돈이 저절로 모여들고 연구성과가 기술과 비즈니스의 혁신으로 파급될 수 있는 최적의 입지를 찾아야 한다. 간단하지만 이 일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은 정치인들이 아니라 바로 과학자들이다. 과학벨트,정말 제대로 만들어야 한다. 더 시간이 없다.
추창근 기획심의실장 논설위원
겨우 중이온가속기와 기초과학연구원의 통합배치 쪽으로 가닥이 잡히기는 했지만 과연 과학벨트를 어디에 조성할 것이냐 하는 핵심의 문제가 남아있고, 당초의 연구기능 집적(集積) 구상은 한참 변질됐다. 알맹이가 아닌 껍데기에만 집착해 모두'우리 동네'만 주장한다. 물론 정부 책임이 크다. 처음 세종시 원안 수정을 위해 과학벨트를 반대급부로 던졌었지만,세종시 수정은 실패하고 과학벨트만 부메랑으로 되돌아 왔다.
과학벨트는 우리나라 기초과학의 수준을 한 단계 높여 우리 경제와 기술의 창조적 혁신을 이끄는 구심점으로 삼겠다는 국가전략이었다. 반드시 해야 할 일이다. 이를 두고 과열 유치경쟁이 벌어지는 것은,과학강국이라는 '염불'보다 예산과 뻥튀기된 기대효과로 포장된 '잿밥'에만 눈이 멀어 있는 탓이다.
정부는 2015년까지 초기에 3조5000억원이 투자되는 과학벨트가 조성 이후 20년간 236조원의 생산유발액과 약 212만명의 고용효과를 낼 것이라고 말한다. 턱도 없는 장밋빛 환상이고 과학의 본질에 대한 이해 결핍이다. 과학은 비즈니스와 다른 영역인데 그걸 뭉뚱그렸다. 자연현상에 대한 탐구의 결과인 과학적 발견과 발명이 응용기술로 이어지고 그것이 경제적 성과로 산출되는 비즈니스의 과정은 그렇게 짧은 시간 안에 간단히 이뤄질 수 없다.
과학은 돈을 쏟아부어 새로운 것을 찾아내고 만드는,대체로 '쓸데 없는 것에 대한 학문'이다. 인류 문명의 가장 획기적인 전환을 가져온 과학적 성취는 '전기(電氣)'다. 19세기 초 패러데이가 그 존재를 설명하고 몇 가지 법칙으로 효용성을 증명했을 때도 '사기(詐欺)아니냐'가 논쟁의 초점이었다. 20세기 최고의 천재 아인슈타인이 4차원 시공간(時空間)에서 질량과 에너지의 등가(等價)법칙을 설명한 방정식 E=mc²를 내놓았을 때 그걸 이해하는 사람은 없었다. 이 방정식이 우라늄이나 플루토늄의 핵분열을 이용한 핵폭탄,그리고 원자력 발전을 낳을 줄은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다.
과학은 그런 것이다. 그럼에도 과학은 돈되는 기술의 뿌리다. 기초학문인 과학이 응용기술의 진보를 촉진하는 원동력이자 기술에서 부딪치는 문제가 과학의 발전을 이끄는 구조다. 과학과 기술을 떼어 놓을 수 없고,과학의 역량이 선진강대국의 잣대인 이유이기도 하다.
지역균형발전이니,국제비즈니스의 거점 조성이니,또는 고용과 생산유발 효과가 얼마나 되느니 하는 막연한 허상(虛像)만 좇고 있는 과학벨트 입지 논쟁은 그래서 전제부터 잘못됐다. 정작 본질의 문제인 과학 그 자체를 어떻게 키울 것인지에 대한 논의가 실종된 것도 그 때문이다.
지금 가장 우선돼야 할 것은 내로라하는 과학자들이 모여 마음놓고 연구에 몰두해 자꾸 많은 발견과 발명을 이끌어 낼 수 있는 최선의 현실적 해법이 무엇인지에 논의를 집중하는 일이다. 빠듯한 돈으로 첨단의 대형 연구시설들을 설치한다면 되도록 많은 연구기관들이 함께 이용해 네트워킹과 시너지를 낼 수 있는 방안은 무엇인지,그런 설비들이 안정적으로 운용될 수 있는 인프라를 갖추기 쉬운 곳,연구인력들이 불편없이 생활하고 자식들 교육시키기 좋은 곳은 어디인지,그래서 우수한 과학자들과 돈이 저절로 모여들고 연구성과가 기술과 비즈니스의 혁신으로 파급될 수 있는 최적의 입지를 찾아야 한다. 간단하지만 이 일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은 정치인들이 아니라 바로 과학자들이다. 과학벨트,정말 제대로 만들어야 한다. 더 시간이 없다.
추창근 기획심의실장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