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병욱 원장, '강북 슈바이처' 꿈꾸는 30년 공공의료醫
"편찮은 어머니를 모시고 오던 경호원,결혼을 앞두고 얼굴의 상처를 걱정하던 예비신랑 군인,친하게 지냈던 이들이 모두 시체가 돼 제 눈앞에 나타났죠."

1979년 10 · 26사태 다음날 서른한살 외과 군의관은 친구들이 하룻밤 새 비명횡사한 모습에 큰 충격을 받았다. 인생이 덧없다는 생각이 들 무렵 서울시 지방공사 강남병원(현 서울의료원)에서 같이 일하자는 제의를 받았다. 시립병원인 그곳은 의료보험이 없던 당시 저소득계층에 의료 혜택을 제공하는 취지에서 운영되고 있었다. 한 해 배출되던 의사가 800여명에 불과한 시절,개업만 하면 성공이 보장됐지만 젊은 군의관은 어려운 길을 택했다.

유병욱 서울의료원장(63 · 사진)은 시립 강남병원에서 이렇게 의사의 길을 시작했다. 30년 만에 '말단 의사'에서 원장이 됐고 그 세월 동안 강남지역은 눈부시게 발전했다. 서울의료원은 삼성동에서 신내동으로 확장 이전해 지난달 25일 진료를 시작했다. 1977년 허허벌판이던 삼성동에 지어진 서울의료원은 저소득층과 서민,독거노인,장애인 등 취약계층을 위한 공공 의료기관 역할을 했다.

이번엔 30년 전과 반대로 강북으로 이전해 사회적 약자에 대한 건강 안전망 역할을 한다. 유 원장은 "그동안 이 지역 시민들은 수요에 비해 병원이 부족해 불편을 겪었다"며 "이를 증명하듯 개원한 지 얼마 안 됐는데 벌써부터 환자들이 몰려들어 바쁘다"고 말했다.

총 면적 9만3000㎡(약 3만평)에 600병상이 넘는 첨단 시설을 갖춘 병원의 모습은 다른 종합병원들과 다름없다. 그러나 여타 병원들이 수익 문제로 응급실을 늘리지 못해 시장바닥 같이 환자들이 붐비는 어려움을 겪는 데 비해 이곳은 응급실 시설과 인력을 크게 확충했다. 마찬가지로 수입에 도움이 안 되는 중환자실도 병원 규모에 비해 많이 확보했다.

인력이 많이 필요한 뇌 · 심장 혈관팀도 운영하고 있다. 유 원장은 "다른 곳에서 돈이 안 된다고 외면하는 부분을 보완하는 게 공공의료의 역할"이라며 "저출산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 낮은 가격의 인공수정시술을 포함하는 '미래맘 클리닉'도 운영하고 있다"고 밝혔다.

의료서비스의 산업화 문제에 대해 그는 "우리나라 최고의 인재들이 의대로만 몰리고 있다"며 "개인적으로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하지만,이런 현실에서 의료 산업화를 통해 해외로 진출하자는 큰 뜻에는 동의한다"고 말했다. 그는 "의료산업 부문과 공공의료 부문은 별개"라며 "공공의료 부문에도 투자가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유 원장은 "지금도 가끔 '돈이 없어서 치료를 못 받는다'는 말을 듣는 게 가장 안타깝다"고 말했다. 그는 "후원단체 등을 찾아보면 얼마든지 치료를 받을 수 있는 길이 있는데 홍보가 부족한 것 같다"며 아쉬움을 나타냈다.

이현일기자 hiunea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