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4년 여름 노르망디에 상륙한 연합군이 파리로 밀고 들어오자 히틀러는 파리 주둔 독일군사령관 콜티츠에게 긴급 명령을 내린다. "적에게 함락되기 전에 파리를 잿더미로 만들라." 노트르담 사원 등 파리 곳곳에는 이미 폭약이 설치돼 있었다. 예술 애호가였던 콜티츠는 고민을 거듭하지만 끝내 폭파 명령을 내리지 않는다. 그 사이 연합군과 레지스탕스는 독일군사령부를 점령하고 콜티츠는 항복한다.

문화재는 이렇게 우연한 일로 살아남기도,훼손되기도 한다. 외규장각(外奎章閣) 도서가 프랑스에 약탈당한 계기가 된 사건은 대원군의 천주교 탄압이다. 조선인 신자 8000여명과 프랑스 선교사 9명이 살해당한 것을 빌미로 톈진에 머물던 로즈 제독의 극동함대가 강화도를 점령한다. 1866년 10월 일어난 병인양요다. 당시 강화도에는 왕실 전적을 보관하는 두 곳의 사고(史庫)가 있었다. 강화성 내 외규장각과 전등사 부근의 장사각(藏史閣) 및 그 별고인 선원보각(璿源譜閣)이다.

프랑스군 눈에 띈 것은 외규장각에 보관돼 있던 화려한 장정의 책들이었다. 로즈 제독은 도서 340권,은궤 886㎏ 등을 군함에 싣고 나머지 5800여권은 불태워버렸다. 도서 대부분은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기증했으나 일부는 선물로 줬다고 한다. 통역으로 함대에 승선했던 리델 주교가 형 루이에게 보낸 편지에서도 당시 정황을 엿볼 수 있다. "책들은 모두 지질과 보존 상태가 좋고 제목도 잘 써 붙였습니다. 진홍색이나 초록색 비단으로 표지를 만들고 구리판으로 제본했습니다…."

진통 끝에 프랑스가 돌려주기로 한 외규장각 도서 297권 중 1차분 70여권이 14일 한국에 온다. 145년 만의 귀환이다. 대부분 조선 왕실의 중요 행사를 글과 그림으로 남긴 의궤(儀軌)다. 국내에 없는 유일본이 30여권 포함돼 있어 가치가 높다. 문제는 반환이 아니라 대여,즉 빌려오는 형식이란 점이다. 5년마다 갱신해야 하고 국보나 보물로 지정할 수도 없다.

영구반환의 선례를 남기면 루브르 등 여러 곳에 보관된 약탈 문화재를 몽땅 돌려줘야 하는 프랑스의 입장을 수용한 결과다. 하지만 약탈 자체를 인정해선 안된다. 불법 반출 증거를 파악하고 영구반환의 논리와 명분을 쌓아야 한다. 일본 미국 등으로 흘러들어간 다른 문화재도 마찬가지다. 일단 반환의 물꼬는 텄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제대로 돌려받는 방안을 찾는 게 관건이다.

이정환 논설위원 jh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