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대규모 기업 구조조정이 시작된 것은 1998년이다. 외환위기가 닥치자 정부는 공적자금을 조성해 기업 구조조정을 추진했다. 적극적으로 외국 자본을 유치하고 대출금을 자본금으로 바꾸는 작업을 벌였다. 수익성이 떨어지는 자산을 팔고 자산 재평가 등을 통해 부실 기업의 재무구조를 개선하도록 했다. 대기업 간에 사업을 교환하도록 하는 '빅딜'을 통해 주력 산업에 집중하도록 하는 것도 포함됐다.

정부는 또 회생이 가능한 기업들은 금융회사와 기업이 자율적으로 협약을 체결해 조금씩 개선해 나가도록 하는 '워크아웃'제도를 도입했다. 2001년 8월엔 워크아웃 조건을 완화해서 기업 구조조정 속도를 높이는 것을 핵심으로 한 기업구조조정촉진법(기촉법)을 한시법으로 도입했다. 기촉법은 채권단의 75%(빌려준 돈 기준)가 동의하면 워크아웃을 개시할 수 있도록 하고 있는데,이 법이 없다면 채권단 전원이 동의해야 해 결정이 내려지기가 쉽지 않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닥친 후에도 기촉법은 조선 건설 해운 등의 구조조정에 역할을 톡톡히 했다. 기촉법은 당초 2005년까지 시행되는 한시법이었다. 하지만 기업 구조조정을 위해 2007년,2010년으로 시한이 두 차례 연장됐다.

그러나 작년 말 국회가 시한 연장도 하지 않고 대체입법도 하지 않아 올 들어 폐지됐다. 법무부와 법원 등 법조계가 반대한 탓이다.

기촉법 입법을 주도한 정부 핵심 관계자는 "기촉법은 법조계와 정부 및 금융계 간 업무영역 다툼으로 변질됐다"며 "법조계가 '밥그릇 다툼'을 벌이지 말고 기업 구조조정을 원활히 한다는 본래의 취지를 봐 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법정관리는 채권단과의 협상을 통해 재무구조를 개선해 가는 기업 구조조정 틀과는 다르다. '우리는 지금 어렵지만 앞으로 회생 가능성이 있으니 기업활동 전반을 대신 관리할 사람을 보내 달라'고 법원에 신청하는 것이다. 법원 내에선 파산부가 담당한다. 채권단은 자신들이 빌려준 돈을 언제 어떻게 돌려받을지 알기 어렵다.

과거에는 법정관리를 신청하는 기업이 드물었다. 경영권을 빼앗긴다는 인식 때문이다. 이 때문에 가급적이면 힘들더라도 채권자들과 지지고 볶는 워크아웃을 택했다.

하지만 최근 들어 법원 관리인이 명목상으로만 존재하고 실질적으로는 '기업 사정을 잘 안다'는 이유로 기존 경영진을 다시 불러들이는 일이 흔해졌다.

이상은 기자 se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