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구 14만여명의 작은 도시이지만 80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곳.수많은 시인과 예술가,사상가,학자를 배출하며 독일 정신사에 기여한 독일 최고(最古)의 대학,막스플랑크연구소를 비롯한 세계적 연구소와 기업들이 있는 곳.중세시대 건물부터 최첨단 빌딩까지 공존하며 전통과 첨단,자연과 도시,정신과 예술이 어우러진 곳.독일 남서부 바덴뷔르템베르크주에 있는 고도(古都) 하이델베르크다.

◆해마다 300만명 이상 찾는 고성(古城)

하이델베르크에 가는 사람들은 두 부류로 나뉜다고 한다. 600년 전통의 하이델베르크에 공부하러 가는 사람과 하이델베르크성(城)을 보러 가는 사람.하이델베르크성은 구시가지와 네카강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높다란 언덕 위에 있다. 이 성에서 맨 처음 만난 것은 담장이 무너진 채 홀로 서 있는 문이다. 하이델베르크성의 주인이었던 팔츠공국의 선제후 프리드리히 5세가 영국에서 시집온 어린 왕비를 위해 하룻밤 사이에 마련한 생일 선물이라고 한다.

13세기에 처음 축조된 것으로 알려진 하이델베르크성에는 종탑을 비롯해 성문탑 화약탑 감옥탑 등 여러 탑과 크고 작은 궁전들이 자리잡고 있다. 성의 보존상태는 그리 좋지 않다. 신 · 구교 간의 싸움인 30년전쟁과 왕위계승전쟁 등을 치르면서 상당 부분 훼손됐고 2차대전 때도 피해를 입었다.

그래도 성은 아름답다. 그중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건물은 1607년 완공된 출입구 정면의 프리드리히궁이다. 특히 프리드리히궁 지하에 있는 세계 최대의 와인셀러가 유명하다. 술통 하나가 사람 키의 몇 배다.

1751년에 만들었다는 원통형의 이 와인셀러는 길이 9m,높이 8m로 세금으로 걷은 와인 22만1726ℓ를 저장할 수 있었다고 한다. 프리드리히관의 절벽 쪽 테라스로 가면 하이델베르크 시가지와 네카강,강 위에 놓인 카를 테오도르다리와 강 건너편 산중턱에 있는 '철학자의 길'이 한눈에 들어온다.

◆정신의 공화국,하이델베르크

하이델베르크성에서 벽돌로 포장된 비탈길을 따라 네카강 쪽으로 내려오면 구시가지다. 구시가의 중심은 마르크트광장의 중앙에 있는 성령교회다. 1398~1515년 건축돼 고딕 양식과 바로크 양식이 혼재된 성령교회는 본래 가톨릭 교회였으나 종교개혁 이후 개신교회가 됐다.

성령교회 길 건너편에는 여러 차례의 전쟁에도 피해를 입지 않고 잘 보존된 '하우스 줌 리터'가 건재하다. 1592년 프랑스 출신 칼뱅주의자인 샤를 벨리에가 르네상스 양식으로 지은 건축물로,한때 하이델베르크 시청으로 사용되다 1703년부터 지금까지 300년 넘게 호텔로 이용되고 있다.

성령교회에서 마르크트광장을 지나 보행자 도로인 하우프트거리를 잠시 걷노라면 하이델베르크대를 만난다. 1386년 선제후 루프레흐트 1세가 설립한 이 학교는 16세기 종교개혁의 보루이자 이후 유럽을 풍미한 낭만주의의 중요한 무대였다. 학교 자체적으로 사법권을 행사했던 학생감옥,220만권의 장서를 보유하고 있는 대학도서관은 이 대학의 명물이다. 하이델베르크대가 있었기에 칸트,괴테,베버,야스퍼스 등 세계 최고의 철학자와 문학가,예술가들이 이 도시로 몰려들었다. 또한 그래서 네카강 건너 언덕 위에 '철학자의 길'도 있는 것이다.

황태자 칼 하인리히와 여관 하녀 케티 간의 '아름답지만 끝내 이루지 못한 사랑'을 담은 영화 '황태자의 첫사랑'을 찍은 곳도 바로 여기였다. 황태자 하인리히가 흥에 겨워 축배의 노래를 부르던 곳,케티가 대학생들 사이에서 맥주잔을 날랐던 쉐펠하우스는 명소가 됐다. 하이델베르크대 학생들이 즐겨 찾던 학사주점 '로텐 옥센'도 300년 세월을 넘어 여전히 성업 중이다.

☞ 여행팁

유럽의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하이델베르크도 때를 잘 골라 가면 유리하다. 1년에 세 번 볼 수 있는 하이델베르크성의 불꽃놀이를 보기 위해서다. 5월의 하이델베르크 봄 축제,8월의 성 축제와 9월 마지막 주의 가을축제가 그런 기회다. 봄 축제는 하이델베르크성 안의 칼스광장에서 펼쳐지며,성 축제에서는 오페라ㆍ뮤지컬ㆍ콘서트 등 다양한 볼거리가 마련된다. 가을 축제에서는 그해에 수확한 포도로 만든 와인도 소개한다. 저녁에는 마르크트광장 일대의 구시가지 골목길을 거닐다 특제 소시지를 안주 삼아 하우스맥주 한잔 하는 맛도 일품이다.

서화동 기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