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경 한국항공우주산업(KAI) 사장(사진)은 작년 가을 기본훈련기 'KT1' 부품을 컨테이너 한 박스에 싣고 인도네시아 공군을 찾았다.

KT1은 일명 '웅비'로 불리는 기종으로 초음속 항공기 T-50의 전신이며,KAI가 2001년 인도네시아에 7대를 수출했다. 주문하지도 않은 부품을 들고오자 인도네시아 공군 실무자들은 당황했다. 그들은 러시아로부터 소모성 부품 공급이 제때 이뤄지지 않아 주력 기종인 '수호이' 운영에 애로를 겪고 있었다. T-50 수출을 위해 러시아 '야크-130'과 치열한 경합을 벌이던 KAI는 바로 이 점을 파고 들었다.

13일 만난 김 사장은 인도네시아 국방부의 초음속 훈련기 입찰에서 KAI가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될 수 있던 비결에 대해 "진정성의 승리"라고 강조했다. "인도네시아 정부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러시아는 몰랐고 우리는 알았다"고 설명했다.

김 사장은 인도네시아와 러시아 양국이 오랫동안 폭넓게 형성한 인맥의 벽을 뚫는 게 무엇보다 힘들었다고 했다. 그는 "사업을 따내기 위해 인도네시아를 찾아갈 때마다 난공불락처럼 느껴졌다"며 "진정성으로 벽을 뚫은 것"이라고 말했다. KAI가 KT1을 자발적으로 수리해 가동률을 높여주자 현지 공군 실무자들이 서서히 KAI에 우호적인 눈길을 보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김 사장은 "수출 대상이 인도네시아라는 것에도 상당한 의미가 있다"고 소개했다. 인도네시아는 옛 소련과 미국 양쪽의 무기 체계를 모두 받아들인 나라로 인도네시아가 T-50을 훈련기로 사용하게 되면,앞으로 다른 나라에 T-50을 팔기 위해 마케팅할 때 큰 힘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폴란드만해도 옛 소련 시절 구매한 노후 훈련기들을 교체할 계획을 갖고 있다.

김 사장은 "협력업체들을 설득해 최대한 합리적인 가격을 제시한 뒤 인도네시아 정부를 적극적으로 설득했다"며 "일각에서 헐값으로 수주했다는 얘기들을 하는데 그것은 터무니없는 추론"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KAI가 민간회사며 70여개 T-50 관련 부품협력업체들과 생사를 함께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반박 근거로 들면서 "이익을 추구하는 민간기업이 어떻게 손해를 보고 물건을 팔겠느냐.결단코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김 사장은 T-50 수출은 "이제 시작일 뿐"이라고 강조했다. "축하한다"는 기자의 말에도 그는 T-50 1000대 수출 목표를 채우기 전까진 축하받을 일이 없다고 했다. "T-50 한 기당 38%는 부품 협력업체들의 땀과 열정으로 이뤄집니다. 해외에 수출하면 적어도 40년은 계속 부품을 수출할 수 있어요. 이만하면 한국 항공산업이 얼마나 성장하게 될지 짐작되시죠?"

박동휘 기자 donghui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