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茶山이 즐겨 마셨던 건 엽차 아닌 '떡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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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쓰는 조선의 차 문화/정민 지음/김영사/752쪽/3만5000원
다산이 초의에 제다법 전수…초의와 추사의 '시너지' 폭발
다산이 초의에 제다법 전수…초의와 추사의 '시너지' 폭발
우리나라 차(茶)문화는 1000년이 넘는다. 《삼국사기》 신라본기 흥덕왕 3년(828년)조에 중국차 전래 기록이 있다. "당나라에서 돌아온 사신 대렴(大廉)이 차 종자를 가져오자 왕이 지리산에 심게 하였다"는 것이다. 차문화는 고려 때에도 이어졌던 것 같다. 황현(1855~1910)의 《매천야록》에 나온 '용단승설차(龍團勝雪茶 · 용이 그려진 덩이차)'가 증거다. 19세기 후반 대원군은 아버지 남연군의 묘를 이장하려고 충남 덕산의 가야산을 찾았다. 지관 정만인이 꼽은 이대천자지지(二代天子之地)의 묘혈인 가야사를 불지르고 5층 석탑을 허물었다. 이 탑에서 700년 묵은 송나라 때의 차,그것도 황제에게 바쳐졌던 용단승설차 네 덩이가 나온 것.
송나라가 망하고 조선으로 왕조가 바뀌면서 우리의 차문화도 맥이 끊겼다. 15세기 조선 4대 왕 세종은 "우리나라는 궐 내에서도 차를 쓰지 않는다"고 말했다. 당시에는 누구나 마시는 기호 음료가 아닌 고아 만든 연고 형태의 상비약으로만 차를 썼다고 한다.
《새로 쓰는 조선의 차 문화》의 저자인 정민 한양대 교수는 "조선에 접어들면서 잊혀졌던 차문화는 18세기 들어 새로이 살아났다"며 "다산과 초의,추사가 그 중심선상에 있다"고 설명한다. 저자는 '다산,초의,추사가 빚은 아름다운 차의 시대'란 부제처럼 세 인물을 중심으로 조선 후기 차 문화사를 다채롭게 조명한다.
저자는 조선 후기 차 문화사의 출발점을 부안현감 이운해(1710~?)의 '부풍향차보(扶風鄕茶譜)'에서 진도에 유배 온 이덕리(1728~?)의 '동다기'에 이르는 시기로 꼽는다. 부풍향차보는 우리나라 최초의 전문 차서다. 초의가 '동다송'에서 인용한 동다기는 다산이 쓴 것으로 오인됐던 기록이기도 하다.
저자에 따르면 우리 차문화의 중흥조는 다산 정약용이다. 저자는 강진에 유배 온 다산이 초의 선사와 혜장 스님에게 차를 가르쳤다고 강조한다. 다산이 만덕산 백련사에 놀러갔다 야생차가 많은 것을 보고 혜장에게 차를 만드는 방법을 알려주었고,1809년 24세의 초의는 48세의 다산을 찾아 배움을 구하면서 제다법도 전수받았다는 설명이다.
다산은 유배생활로 악화된 건강 때문에 차를 더 마셨다고 한다. "욕심쟁이가 된 데다,겸하여 약용에 충당하고 있다네/…/병든 숫누에는 마침내 노동의 일곱 사발 차를 다 마셔버렸다오/…/마침내 막힌 것을 뚫고 고질을 없앤다고…." 자신을 탐욕이 많고 포악한 상상의 동물 도철에 빗대 차를 보내달라며 혜장에게 보낸 걸명소(乞茗疎)의 내용이다.
당시 다산이 마셨던 차는 지금의 녹차와는 다른 '떡차'였다고 한다. 찻잎을 여러 번 찌고 말려 차의 독성을 누그러뜨린 뒤 가루를 내고 돌샘물에 반죽해 작은 떡처럼 만든 차다.
차 문화는 다성(茶聖)으로도 불리는 초의에 이르러 만개했다. 스물네살 때 다산을 찾아 교류한 초의의 차가 처음 세상에 알려진 때는 1830년께다. 스승의 사리탑 기문을 받기 위해 예물로 들고 온 '보림백모 떡차'가 히트를 쳤다. 스승 신위가 '남차시'를 지어 초의를 '전다박사(煎茶博士)'로 치켜세우면서 날개를 달았다. 정조의 외동사위였던 홍현주까지 나서면서 초의가 '동다송'을 짓게 되어서는 그 명성을 따를 사람이 없게 됐다.
초의의 유명세 뒤에는 추사 김정희가 있었다고 한다. 당대 북경의 대학자 완원에게서 용단승설차를 맛본 추사였으니 동갑내기 초의의 차에 대한 평가는 엄청난 것이었다. 추사는 편지를 쓰고 글씨를 보내면서 초의의 차를 가져다 먹기에 바빴다고 한다. "새 차는 어찌하여 돌샘과 솔바람 사이에서 혼자만 마시면서 애당초 먼 데 있는 사람은 생각조차 하지 않는 게요. 몽둥이 삼십 방을 아프게 맞아야겠구려." 새 차를 안 보내주면 매라도 들겠다고 투정부리는 추사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저자는 이 책의 후기에서 차문화와 관련된 오류를 바로잡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동다기'에 나오는 '구방지상마(九方之相馬)'라는 말은 구방고란 사람이 말의 관상을 보듯이 차의 맛을 잘 감별해낸다는 뜻인데,차 문화 강의 교재에는 '아홉 방향으로 서로 말을 타고'로 풀이된 게 대표적이다.
"차 잡지에 실리는 찻자리 퍼포먼스도 야단스러워 우습기까지 할 때가 많아요. 차를 마시는 게 값비싼 다기를 늘어놓고 하는 호사 취미가 됐어요. 차를 마시고 향을 사르며 인생의 정취를 음미했던 선인들의 정신을 되살려야 하지 않을까요. "
김재일 기자 kji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