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았다는 느낌이 들었다. 기자는 14일 오후 2시께 농협 인터넷뱅킹을 시도했다. 공인인증서 로그인 화면이 무려 3분이나 지나서 떴다. 미심쩍었지만 일단 내 계좌를 확인할 수는 있었다. 잔액은 멀쩡했다.

당장 급한 것은 15일 카드값이 출금되는 다른 은행 계좌로 돈을 옮기는 일이었다. 농협 측은 이날 새벽 2시5분부터 현금자동입 · 출금기(ATM)를,새벽 2시23분부터는 인터넷뱅킹 폰뱅킹을 정상적으로 가동하고 있다고 밝혔다. 계좌이체를 시도했다. "오류로 처리가 불가하다"는 메시지만 떴다. '계좌조회' 버튼을 눌렀더니 20분도 넘게 처리 중이라는 말만 뜨고 먹통이었다.

오후 3시10분께.기자실 밖으로 나가 ATM에 농협 신용카드를 넣어봤다. 하지만 ATM 전체에 장애가 일어났다. 출금을 시도하던 농협 직원들의 현금카드와 체크카드,기자의 신용카드가 모두 ATM에 '먹혔다가' 2~3분 후 오류 메시지와 함께 배출됐다. 농협 직원들은 "돈을 찾기 어려울까봐 미리 찾아놓으러 왔는데 아직도 고장"이라며 돌아갔다.

ATM과 인터넷뱅킹은 이날 밤에야 비교적 안정적으로 운영됐다. 당초 낮 12시에 한다던 신용카드 · 체크카드 기능 복구는 밤 늦게까지 해결되지 않았다.

◆양치기 소년 된 농협

고객이 3000만명인 농협에서 전산장애가 처음 일어난 것은 지난 12일 오후 5시10분.이후 만 48시간이 흘렀지만 복구는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농협 측은 ATM과 인터넷뱅킹 등 일부 기능을 복구했다고 발표했지만 정상 작동하지 않았다.

고객들은 대출금 이자 상환,카드값 결제,부동산 잔금 체결 등 금융거래에 큰 차질을 빚었다. 항의가 빗발쳤다. 12일부터 농협 금융기획부가 집계한 고객 민원 전화는 14일 오후 3시까지 총 12만3880건에 달했다.

정상화 발표 후에도 거래가 원활하지 않자 일부 고객들은 "농협이 제대로 복구하지 않고 거짓 해명을 낸다"고 비판했다. 농협은 장애가 처음 발생한 날 오후 5시30분께 "오후 6시30분까지 복구가 완료될 것"이라고 했다. 이날 밤에는 "13일까지 복구하겠다"고 했고,13일에는 "14일까지 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매번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이 과정에서 최원병 농협 회장조차 제때 보고를 못 받은 것으로 알려져 은폐 의혹도 일고 있다. 최 회장은 14일 오후 열린 대국민사과 회견에서 "사고가 난 뒤 내용을 곧바로 보고받지 못했다"며 "다른 쪽에서 그 내용을 알고 부속실에 전화해 무슨 일이냐고 따졌다"고 말했다.

◆"피해액 전부 보상" 약속

최 회장은 이날 "오랜 시간이 걸리더라도 피해 보상에 대해서는 금액이 얼마가 되든 간에 100% 보상을 하겠다"고 말했다. 신민섭 기획담당 상무도 "카드대금 결제와 대출금 이자 납입,공과금 납입 등이 지연되거나 수수료가 발생했을 경우 전액 보상할 것"이라며 "연체로 인해 고객 신용에 문제가 생겼을 때도 관계 기관과 협의해 불이익을 막겠다"고 설명했다.

신 상무는 특히 "고객이 피해를 요청하지 않더라도 미리 찾아서 발생한 피해를 보상하겠다"고 약속했다. 피해 보상 시점에 대해서는 "이번 주는 어렵고 다음주는 돼야 할 것"이라고 했다. 농협은 또 인터넷뱅킹 텔레뱅킹 모바일뱅킹 스마트뱅킹의 타행이체 수수료를 17일까지 면제하기로 했다.

농협은 아울러 정보기술(IT) 부문에 더 많은 예산을 투자하고 수많은 자회사 등이 한데 얽히고 설켜 있는 시스템도 체계적으로 개선하겠다고 했다. 농협은 올해 IT 예산으로 1255억원을 배정했지만 보안 예산은 60억원(4.78%)에 그쳤다.

◆금감원 · 검찰 조사 착수

금융감독원과 검찰은 농협에 대한 조사에 나섰다. 금감원과 서울중앙지검 첨단범죄수사2부는 13일 각각 직원들을 파견해 IBM 직원의 노트북과 관련 전산자료를 확보했다.

검찰은 아직 정식으로 수사 의뢰가 들어오지 않았지만 사건의 중요성을 감안해 자체 내사에 착수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들은 해킹 여부를 비롯해 고의적 시스템 훼손 등을 중점적으로 볼 예정이다.

이상은/임도원 기자 se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