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이 누워 있다는 와룡산(臥龍山).전국 도처에 와룡산이 많지만 명산의 반열에 드는 것은 한려해상국립공원의 중심부에 있는 사천 와룡산이다. 해발 801.4m인 사천 와룡산은 거대한 용 한 마리가 다도해를 품고 누운 형상이다. 흙이 많은 육산이지만 바위능선이 많아 형세가 웅장하다. 더구나 점점이 흩어진 다도해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조망은 와룡산 등산의 백미로 꼽힌다. 40년 경력의 전문산악인이자 베스트셀러 《유정열의 한국 1000명산 견문록》의 저자인 유정열 관동산악연구회장이 이끄는 산행팀과 함께 와룡산 산행에 나섰다.

휴게소에서 아침을 든든히 먹지 않았다면 후회할 뻔했다. 서울에서 사천까지는 버스로 네 시간 남짓 걸렸다. 오전 7시에 서울 사당역을 출발했지만 산행은 거의 12시가 다 돼서야 시작했다. 점심은 생략한 채 산으로 직행이다. 그래도 즐거운 건 봄꽃 덕분이다. 산행 출발지인 남양저수지부터 매화,개나리,목련이 반기더니 상사바위로 더 유명한 천왕봉(630m)으로 향하는 산길로 들어서자 진달래가 도처에서 인사를 건넨다. 4월 말~5월 초 무렵 피는 와룡산 철쭉은 사천 8경에 들 만큼 유명하다. 하지만 자태나 빛깔이 진달래에 미칠까.

천왕봉으로 가는 길은 생각보다 가파르고 험하다. 급경사에 숨이 찬다. 때론 길을 막아버리는 바위 때문에 당혹스럽다. 한 시간쯤 올랐을까. 앞서가던 사람이 뒤처진 아주머니한테 좀 더 힘을 내라고 재촉한다. 아주머니의 답이 허를 찌른다.

"아,여기까지 와서도 올라가기만 하면 무슨 재미예요? 우리가 왜 먼길을 마다않고 여기까지 왔는데요. 뒤를 보세요,뒤를!"

그제서야 뒤를 돌아보니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소나무와 진달래꽃 너머로 남해바다와 다도해,사천시가 한눈에 들어온다. 오른쪽으로는 사천시 서포면 자혜리와 용현면 주문리를 잇는 아치 모양의 사천대교가 손에 잡힐 듯하다. 왼쪽으로 바다를 보니 가까이 삼천포화력발전소와 신수도,수우도부터 멀리 남해 금산,두미도,욕지도,사량도까지 연무 속에 희미하게 잡힌다. 그림 그리는 재주가 있었으면 동양화로 남겨놓고 싶을 정도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당도한 천왕봉.정갈하게 쌓은 돌탑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2000년 9월 히말라야 다울라기리봉을 오르다 불의의 눈사태로 숨진 이수호 등반대장의 산악정신을 기리는 비석이 서 있다. 새삼 산을 오르는 의미를 생각케 한다. 우리는 왜 가지 않은 길을 가려 하고 더 높은 곳에 오르려 애쓰는가. 잠시 숙연했던 마음을 거두고 다시 발아래를 보니 남해바다의 아름다운 섬들이 더 많이,더 가깝게 다가온다.

천왕봉보다 널리 알려진 '상사바위'는 높이 60m쯤 되는 직벽이다. 상사병에 걸린 사람을 이곳에서 떠밀어 죽였다고도 하고,부모의 반대로 사랑을 이루지 못한 남녀가 절벽 아래로 몸을 날렸다고도 한다. 바위 끝에는 철제 난간과 로프가 처져 있고 '위험,암벽등반 중입니다'라는 표지판도 세워져 있다. 눈을 들어 맞은편 산을 보니 와룡의 등처럼 구불구불한 능선이 힘차다. 그 능선에 와룡산 최고봉인 새섬봉(새섬바위 · 801.4m)과 두 번째 봉우리인 민재봉(798m)이 있다.

상사바위에서 만만찮게 가파른 길을 내려가니 도암재다. 이 도암재를 경계로 새섬바위와 상사바위가 마주보고 있다. 도암재에서 한 시간쯤 급경사 길을 오르니 새섬바위다. 새섬바위는 아주 먼 옛날 심한 해일로 바닷물이 이 산을 잠기게 했을 때 이 봉우리만 물에 잠기지 않았고,섬처럼 남은 봉우리 끝에 새 한 마리가 앉아 죽음을 면했다는 전설을 간직하고 있다. 상투처럼 우뚝 솟은 새섬봉은 남성처럼 강한 느낌을 준다.

이에 비해 새섬봉에서 완만한 능선을 따라 1.6㎞쯤 더 가면 만나게 되는 민재봉 정상은 평지다. 민재봉은 2년 전까지만 해도 와룡산 최고봉으로 대접받았으나 국립지리정보원이 고도를 새로 측정한 결과 새섬봉에 최고봉의 자리를 내줬다. 그러나 조망은 여전히 민재봉이 최고다. 시계가 좋을 땐 북쪽의 하동 금오산,광양 백운산,봉명산,지리산 천왕봉,남덕유산,자굴산,월여산,방어산이 다 보이고,남으로는 사량도,욕지도,두미도,수우도,신수도,남해금산,호구산,망운산이 한눈에 들어온다고 한다.

민재봉에서 하산하는 길도 '눈 호강'의 연속이다. 이름도 재미있는 기차바위,사자바위,거북바위 등이 이어진다. 더구나 새섬바위에서 민재봉을 지나 기차바위까지는 철쭉 구간으로 이름이 높으니 이 봄 철쭉 산행을 강추한다.

☞ 여행팁

산행 끝에 먹는 해산물 '별미'…물살 세서 육질 쫄깃

사천은 원래 삼천포시였으나 1995년 사천군과 통합하면서 사천시로 이름이 바뀌었다. 행정지명은 없어졌지만 삼천포라는 이름은 여전히 살아있다. 산행을 마치고 20~30분 거리인 삼천포항에 들러보자.해산물 난전이 성시를 이루고 있다. 삼천포 서부시장에 가면 좌판에서 싱싱한 활어를 직접 사서 먹을 수 있다. 700명을 수용할 수 있다는 삼천포수협활어회센터식당(055-833-4355)은 단체여행객들이 많이 들르는 곳인데,쫄깃한 회맛이 일품이다. 사천 앞바다는 물살이 세서 고기의 육질이 단단하고 쫄깃하다는 설명.건어물이 다른 지역보다 싸기 때문에 장보기에도 좋다.

서화동 기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