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역사교과서, 아직도 불만족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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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교과서 건국·분단 서술 좌편향
편견 벗고 상식과 순리 살려야
편견 벗고 상식과 순리 살려야
한국사회에서 교과서의 의미는 특별하다. 중 · 고등학교 학생들이 배우고 시험을 통해 수시로 익히는 기본교재가 되고 있기 때문이지만,그보다 중요한 점이 있다. 교과서에 담겨져 있는 내용이 한국사회에서 '정론'으로 평가받고 있다는 사실이다. 역사교과서의 무게는 더 말할 나위가 없다. 청소년들에게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정체성을 구성하는 도덕적 가치관을 심어주고 우리 삶의 뿌리가 어디에 있는가를 '올바로' 또 '정확하게' 가르쳐 주는 것이 역사교과서가 아닌가.
바로 그렇기 때문에 과거에서 현대로 이어지는 한국인의 삶은 물론,풍요롭고도 역동적인 사회 · 정치 · 경제현실을 제대로 담아내야 한다는 기대를 갖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또 이점이야말로 역사교과서의 내용이 특정학파의 주장이나 특정이념의 내용을 넘어 광범위한 국민적 합의와 국가공동체의 지향점을 담아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한동안 우리사회에는 반외세 · 민족해방을 표방하는 좌파민족주의가 성행했다. 좌파민족주의자들은 정부수립은 물론 산업화 등 그들의 힘으로 이룩했다고 주장하는 민주화 이외에 선배와 부모세대가 이룩한 모든 것들을 '성취'라기보다는 '문제점'이나 '비정상적인 현상'으로 판독해왔다.
물론 그런 좌파민족주의라도 학설로 존재할 수 있으며,학문공동체에서 하나의 입장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역사교과서에 '정설'처럼 실리게 된 것은 문제다. 공동체의 구성원들이 피땀흘리며 일구어온 기념비적 사건을 새로운 세대들에게 왜곡해서 전해주는 '편향된 기억의 정치화'가 우리사회에서 현저하게 나타나게 된 것도 이 때문이다.
그래서 뜻있는 많은 사람들이 편향된 기억을 강요하는 교과서의 문제점을 오랫동안 공론의 장에서 호소해 왔고,수정을 요구해 왔다. 현 교육과학기술부는 이런 요구를 받아들여 수정지시를 내림으로써 일부의 자구나 표현은 고쳐지기도 했다. 하지만 '바른 역사쓰기'는 아직까지 만족스러운 형태로 실현되고 있다고는 보기 어렵다.
이번에 새로 출판된 고교 한국사 교과서 총 6종을 보면 이런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새 교과서에서 지나친 좌편향적 서술은 상당 부분 줄어들었다. 그럼에도 남아있는 문제점은 적지 않다.
가장 큰 문제는 건국과 분단,전쟁에 대한 편향된 서술이 개선되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북한에 대한 근거없는 우호적인 서술도 그대로다. 분단문제가 이승만 박사의 책임인 것처럼 서술되고 있는 반면,스탈린의 지시에 따라 우리보다 먼저 단독정부 수립에 착수한 북한에 대해서는 별로 지적이 없다. "남쪽에 정부를 수립하자"는 1946년 6월 이승만 박사의 정읍 발언은 모든 교과서에 실렸으나,이보다 4개월 앞선 1946년 2월 북한이 사실상의 단독정부인 인민위원회를 세운 일은 명확하게 지적되지 않고 있다. 1990년대 중반 이후 소련과 중국의 현대사 문서가 공개되며 새롭게 밝혀진 내용이 반영되지 않은 것이다.
그런가하면 6 · 25전쟁 중,국군과 미군의 민간인 사살만 크게 부각시킨 반면,북한군의 민간인 사살은 평이하게 서술하고 있는 것도 문제다. 또 소유권이 아니라 경작권만 부여한 북한의 토지개혁이 갖는 문제점에도 주목하지 않고 있다. 뿐만 아니라 김정일의 권력세습 과정을 설명하면서 '세습'이라는 용어를 쓰지 않고 '후계체제 확립' 혹은 '권력계승'이라는 식으로 표현했다. 전체주의 정권 아래 신음하는 북한 주민의 인권을 외면하는 몰가치적 서술도 문제다. 북한의 공개처형과 정치범수용소의 존재는 거의 다루지 않은 것이다.
아직도 대한민국에 대해선 공정하지 못하고 북한에 대해선 우호적인 시각이 담겨 있다는 증거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상식과 순리가 살아 꿈틀거리는 역사교과서지,이념적 편견과 편향이 버젓이 남아 있는 교과서는 아니다.
박효종 < 서울대 교수·윤리교육 >
바로 그렇기 때문에 과거에서 현대로 이어지는 한국인의 삶은 물론,풍요롭고도 역동적인 사회 · 정치 · 경제현실을 제대로 담아내야 한다는 기대를 갖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또 이점이야말로 역사교과서의 내용이 특정학파의 주장이나 특정이념의 내용을 넘어 광범위한 국민적 합의와 국가공동체의 지향점을 담아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한동안 우리사회에는 반외세 · 민족해방을 표방하는 좌파민족주의가 성행했다. 좌파민족주의자들은 정부수립은 물론 산업화 등 그들의 힘으로 이룩했다고 주장하는 민주화 이외에 선배와 부모세대가 이룩한 모든 것들을 '성취'라기보다는 '문제점'이나 '비정상적인 현상'으로 판독해왔다.
물론 그런 좌파민족주의라도 학설로 존재할 수 있으며,학문공동체에서 하나의 입장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역사교과서에 '정설'처럼 실리게 된 것은 문제다. 공동체의 구성원들이 피땀흘리며 일구어온 기념비적 사건을 새로운 세대들에게 왜곡해서 전해주는 '편향된 기억의 정치화'가 우리사회에서 현저하게 나타나게 된 것도 이 때문이다.
그래서 뜻있는 많은 사람들이 편향된 기억을 강요하는 교과서의 문제점을 오랫동안 공론의 장에서 호소해 왔고,수정을 요구해 왔다. 현 교육과학기술부는 이런 요구를 받아들여 수정지시를 내림으로써 일부의 자구나 표현은 고쳐지기도 했다. 하지만 '바른 역사쓰기'는 아직까지 만족스러운 형태로 실현되고 있다고는 보기 어렵다.
이번에 새로 출판된 고교 한국사 교과서 총 6종을 보면 이런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새 교과서에서 지나친 좌편향적 서술은 상당 부분 줄어들었다. 그럼에도 남아있는 문제점은 적지 않다.
가장 큰 문제는 건국과 분단,전쟁에 대한 편향된 서술이 개선되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북한에 대한 근거없는 우호적인 서술도 그대로다. 분단문제가 이승만 박사의 책임인 것처럼 서술되고 있는 반면,스탈린의 지시에 따라 우리보다 먼저 단독정부 수립에 착수한 북한에 대해서는 별로 지적이 없다. "남쪽에 정부를 수립하자"는 1946년 6월 이승만 박사의 정읍 발언은 모든 교과서에 실렸으나,이보다 4개월 앞선 1946년 2월 북한이 사실상의 단독정부인 인민위원회를 세운 일은 명확하게 지적되지 않고 있다. 1990년대 중반 이후 소련과 중국의 현대사 문서가 공개되며 새롭게 밝혀진 내용이 반영되지 않은 것이다.
그런가하면 6 · 25전쟁 중,국군과 미군의 민간인 사살만 크게 부각시킨 반면,북한군의 민간인 사살은 평이하게 서술하고 있는 것도 문제다. 또 소유권이 아니라 경작권만 부여한 북한의 토지개혁이 갖는 문제점에도 주목하지 않고 있다. 뿐만 아니라 김정일의 권력세습 과정을 설명하면서 '세습'이라는 용어를 쓰지 않고 '후계체제 확립' 혹은 '권력계승'이라는 식으로 표현했다. 전체주의 정권 아래 신음하는 북한 주민의 인권을 외면하는 몰가치적 서술도 문제다. 북한의 공개처형과 정치범수용소의 존재는 거의 다루지 않은 것이다.
아직도 대한민국에 대해선 공정하지 못하고 북한에 대해선 우호적인 시각이 담겨 있다는 증거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상식과 순리가 살아 꿈틀거리는 역사교과서지,이념적 편견과 편향이 버젓이 남아 있는 교과서는 아니다.
박효종 < 서울대 교수·윤리교육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