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인권위원회가 KAIST를 조사하겠다는 것은 실로 뜬금없는 이야기다. 인권이라는 추상적 구호를 내걸어 세상의 온갖 일상에 간섭하겠다는 놀라운 발상이다. 인권 개념의 무한 확장이며 제도 위에 군림하는 결과를 초래할까 걱정된다. 과거 안보를 빌미로 온갖 국정에 개입하던 정보부를 떠올리게 되는 그런 상황이다. 인권위는 사회적 약자와 소외된 자들을 보듬는 사회적 감시기구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받아야 하는 응당의 권리가 침해당할 때 그들에 대한 배려의 손길을 뻗게 되고 그런 의미에서 사회적 억압을 감시하는 워치독(watch dog)이다.

인권위 활동이 특정 사건에서 벗어나 법률과 제도에 대한 감시로까지 확장되어야 한다는 데는 전혀 이견이 없다. 그러나 인권이라는 구호가 봉건시대의 원님 재판처럼 제멋대로 확장해석될 수는 없다고 본다. 인권위는 KAIST에서 잇달아 발생한 불행한 사건을 차별 해소라는 차원에서 접근하는 것 같다. 그러나 등록금 차별 혹은 장학금 차등에 대한 다양한 제도들을 불공정한 차별로 본다면 이는 인권개념의 지나친 확장이요,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식의 개념 혼란에 불과하다.

사회제도는 다양한 인센티브로 설계되는 것이고 평등은 곧 기회의 동등성이란 점을 인정한다면 인권위가 KAIST 문제에까지 개입하는 것은 어느모로 보나 옳지 않다. KAIST는 누구나 인정하듯 우수한 청년인재들을 자발성에 기초해 교육하는 고등교육기관이다. 더구나 국가가 재정을 전액 지원한다. 사회적 강제가 존재하거나 반인권적 처사를 억압적으로 구조화하는 그런 조직이 결코 아니다. 누구나 능력에 따라 선택하는 것이고 학교 역시 동등한 기준으로 학생 자격을 선택하게 된다.

민감한 청소년들이 학업에서 받는 스트레스를 억압의 구조화로 해석한다면 이는 인권을 3류 문학화하는 저차원의 소녀취향적 사회인식에 불과하다. 정당한 차등의 제도화는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의 본질이다. 인권위가 인권 개념을 독재시절의 안보개념처럼 제멋대로 해석하는 우를 범하지 않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