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부토건이 서울 내곡동 헌인마을 도시개발 프로젝트 파이낸싱(PF) 대출 만기를 하루 앞두고 전격 신청했던 법정관리(기업회생절차)를 철회할 뜻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삼부토건 관계자는 17일 "공동 시공사인 동양건설산업까지 법정관리를 신청해 상황이 더 악화됐다"며 "헌인마을 PF 대출 외에도 올해 중으로 총 4200억원 규모의 PF 대출이 만기 도래할 예정이어서 채권단의 추가 담보 등 요구를 들어줄 수 없는 처지"라고 말했다. 금융감독원의 전자공시 시스템에 따르면 삼부토건의 PF 대출 총 규모는 7개 현장에 약 9300억원이다. 이 중 헌인마을 외에 올 상반기 안에 900억원어치 PF 대출의 만기가,하반기에도 3개 현장에 3280억원의 PF 대출 만기가 각각 돌아올 예정이다. 앞서 삼부토건은 지난 12일 동양건설과 함께 헌인마을 개발사업에 대한 PF 대출 4270억원의 만기 연장을 은행과 종금사 등 20여개 금융회사로 이뤄진 채권단에 요청했다. 하지만 채권단은 추가 담보 제공뿐만 아니라 함께 사업을 진행한 동양건설 대출금 2250억원에 대해 연대보증 책임을 물어 협상이 결렬됐다.

후순위 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 문제는 더 복잡하다. 헌인마을에 대한 4270억원 PF 대출은 선순위 대출과 후순위 ABCP가 반반 정도로 구성돼 있다. 우리은행,농협,국민은행 등 제1금융권은 선순위 채권자다. 이들은 담보로 잡은 헌인마을 토지를 매각해 2000억원 정도는 건질 수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저축은행 등 2금융권이 대출금을 기초로 발행한 ABCP 투자자는 후순위여서 헌인마을을 매각해도 한푼도 못 받는다. 삼부토건 관계자는 "일반공모를 통해 ABCP를 몇억원씩 쪼개 팔았기 때문에 어음소지자가 수백 명에 달할 것"이라며 "기업구조조정촉진법이 없어 만기 연장을 받으려면 이들 모두의 동의를 받아야 하는데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삼부토건과 채권단은 지난 주말부터 마라톤 협상 중이지만 뾰족한 해답을 얻지 못하고 있는 상황.삼부토건 측은 법정관리 신청 후 회사 신용등급이 떨어져 회사채를 발행할 수 없게 되자 "신용등급을 올려준다고 약속하면 법정관리를 철회하겠다"고 채권단과 금융당국에 요구하기도 했다. 금융당국 등은 이에 대해 "신용등급은 신용평가사가 해야 할 일이고 정부나 채권단에서 개입할 수 없다"고 거절한 것으로 전해졌다. 삼부토건은 또 ABCP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신규 대출을 요구하고 있지만 주채권은행이 난색을 표명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삼부토건 내부에서도 이 문제로 강온파로 나뉘어 내홍 조짐까지 보이고 있다. 강경파는 "빚이 너무 많기 때문에 담보를 주고 망하느냐,안 주고 망하느냐 둘 중 하나이며,담보를 주고 망하는 게 더 나쁘다. 지금 법정관리로 가는 게 더 낫다"고 주장한다. 이에 대해 기획실의 조성하 상무는 회사의 공식 입장이라며 "채권단과 상당 부분 접점을 찾아가고 있으며,가능하다면 철회하는 쪽으로 가려고 한다"며 철회 가능성에 무게를 두었다.

김병일 기자 kb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