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견 건설회사 부도 사태가 5~6월에도 계속 이어질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채권은행의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PF) 대출 만기가 이때 집중돼 있기 때문이다. 김석동 금융위원장과 권혁세 금융감독원장이 18일 오전 5대 금융지주사 회장들과 긴급 간담회를 갖기로 한 것도 PF 대출을 더 이상 방치해선 안 된다는 위기감이 작용했기 때문이다.

◆금융권 리더십 발휘 요구

김 위원장과 권 원장이 동시에 나서 금융지주 회장들을 소집한 데에는 부동산 PF 여신 회수 확대가 건설사들의 연쇄 부도를 촉발시킬 것이라는 위기감이 크게 작용했다. 건설사들이 도미노처럼 붕괴하면 막대한 자금을 대출해준 금융권이 함께 무너지는 '시스템 리스크'로 확대될 수 있기 때문이다.

금융위와 금감원은 최근 저축은행 등 금융권의 부동산 PF 대출 회수,고객정보 유출 및 전산망 마비 사태 전개 과정에서 지주사들의 역할이 미흡했다고 판단하고 있다. 은행 카드 등을 거느린 지주사들이 큰 틀에서 금융권의 위기 조짐에 합심해 대응하는 모습을 보이기보다는 외형 확대와 실적 부풀리기에 계속 열을 올리고 있다는 게 금융당국의 인식이다.

김 위원장이 긴급 회동에서 '금융권 맏형으로서의 리더십 회복'을 강하게 주문하기로 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지주사들은 은행 보험 증권 카드 등은 물론 앞으로는 저축은행들까지 품에 안게 될 가능성이 크다"며 "금융권 공동의 위기를 조기에 틀어막기 위해서는 지주사들이 어느 정도 희생을 감수하더라도 리더십을 발휘하는 것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기"라고 말했다.

◆저축은행 PF 만기 10조원

금융권에 연내 돌아오는 PF 대출 만기는 25조원 규모다. 은행권 15조원,비은행권 10조원 등이다.

금감원이 PF 대출의 만기를 조사한 결과 올해 2분기에 가장 많이 몰려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6조1000억원의 PF 대출이 남아 있는 우리은행은 5~6월 중 1조3000억원의 만기가 돌아온다. 국민은행도 이 기간 1조원의 PF 대출 만기가 기다리고 있다. 국민은행 관계자는 "올해 PF 대출 3조5000억원의 만기가 돌아오며 이 중 1조5000억원을 회수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한국기업평가 역시 36개 주요 건설사가 상반기에만 13조8000억원의 PF 대출금을 갚거나 연장해야 할 것으로 전망했다.

문제는 'PF 대출 25% 이하' 규제를 7월부터 맞추기 위해 무차별 여신 회수에 나서고 있는 저축은행이다. 작년 말 기업구조조정촉진법(기촉법)마저 폐지돼 한계기업에 대한 은행권 공동 워크아웃도 어려운 상황이다.

저축은행의 PF 대출 만기는 3분기에 몰려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솔로몬저축은행 계열의 PF 만기는 2분기 1000억원에서 3분기 1300억원으로 늘어나는 것으로 조사됐다. 현대스위스저축은행과 한국저축은행의 PF 만기 역시 2~3분기 각각 2200억원 및 1000억원에 달한다.

◆금융지주 회장 자리 배치에 관심

김 위원장이 주요 금융지주사 회장들을 모두 초청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게다가 강만수 산은지주 회장까지 참석할 것으로 알려지면서 각 지주사 회장들의 자리 배치가 어떻게 이뤄질지가 금융계의 관심사로 떠올랐다.

간담회가 열리는 은행연합회관 회의장에는 직사각형 테이블이 놓인다. 창문을 등지고 김 위원장이 가운데 앉고,왼편에 권 원장이 앉을 예정이다. 김주현 금융위 사무처장,진웅섭 금융위 대변인,주재성 금감원 부원장보가 테이블 코너를 각각 차지한다.

금융위는 17일 밤 늦게까지 나머지 5개 자리를 5개 지주사 회장들에게 어떻게 배치하느냐를 놓고 고심을 거듭했다. 기획재정부 장관을 역임한 강 회장,고려대 총장과 국가브랜드위원장을 역임한 어윤대 KB금융 회장 등 '쟁쟁한 인사'들이 금융지주사 회장으로 포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가장 유력한 방안은 회사의 자산 순으로 좌석을 배치하는 것이다. 제일 상석인 김 위원장 맞은편에는 이팔성 우리금융 회장이 앉고 왼편에는 한동우 신한금융 회장,오른편에는 강만수 회장이 앉는 것이다. 김 위원장의 오른편에는 어윤대 KB금융 회장,권 원장 왼편에 김승유 하나금융 회장이 자리를 잡는다. 나이 순으로 좌석을 정하면 김승유 회장이 김 위원장 맞은편 상석에,설립 인가 순으로 하면 이팔성 회장이 상석에 앉게 된다.

금융위 관계자는 17일 "좌석 배치를 나이 순으로 할지,회사 설립 인가 순으로 할지,자산 순으로 할지를 놓고 밤 늦게까지 고민했다"며 "최종 좌석 배치는 회장들의 자리 양보 등으로 인해 회의 바로 직전에 바뀔 수도 있다"고 말했다.

조재길/류시훈/이상은 기자 roa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