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자력 홍보기관인 한국원자력문화재단이 국민을 상대로 한 정기 원자력 여론조사 시기를 미뤘다. 당초 올해부터 3개월마다 한 번씩 여론조사를 하기로 내부 방침을 정했지만,첫 조사 시기인 1분기부터 어겼다. 재단 관계자는 "준비가 되는 대로 조만간 조사할 예정"이라고 했지만 뒷맛이 개운치 않다.

재단 안팎에선 일본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 폭발 사고가 여론조사 주기에 영향을 미쳤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달 11일 일본 대지진 이후 일본 원전 상황이 '제2의 체르노빌'에 비유될 정도로 심각해지고,한국에서도 방사능이 검출되면서 원자력에 대한 국민 여론이 악화되자 의도적으로 여론조사를 늦춘 게 아니냐는 것이다. 정부 내에서도 지금은 원전 홍보를 하기에 좋지 않은 시기라는 분위기가 감지된다. 여론조사를 할 때마다 정부와 상의해온 재단도 이런 분위기를 감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실 재단의 여론 조사는 그 전부터 들쭉날쭉이었다. 재단이 처음 여론조사를 실시한 것은 1990년대 중반이었다. 이후 여론조사 주기는 1년에 한두 번 정도였다. 그러던 재단이 지난해에는 '한 달에 한 번씩'으로 여론조사 주기를 단축했다. 2009년 12월 말 아랍에미리트(UAE)에 원자력 발전소를 수출한 게 결정적 계기였다. 정부가 '원전 르네상스'를 부르짖으며 "2030년까지 원전 80기를 수출하겠다"는 청사진을 제시하자 재단의 발걸음도 빨라졌다. UAE 원전 수출 덕분에 원자력에 대한 국민적 호감도는 90%대에 달했고,재단은 이런 사실을 적극적으로 홍보하기도 했다.

그러나 UAE 수주 이후 1년간 원전 수출이 단 한건도 성사되지 않으면서 재단은 올해부터 여론조사를 3개월에 한 번하는 걸로 바꿨다. "(한번 여론조사를 할 때마다)예산이 몇천만원씩 드는데 굳이 매달 할 필요가 있느냐"는 게 재단 측 해명이지만 쉽게 수긍하기는 힘들다.

원자력은 '두 얼굴'을 갖고 있다. 전력 생산 단가가 석유 등 화석연료에 비해 낮고 온실가스도 적게 배출한다는 장점과 한번의 사고로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낳을 수 있다는 단점이 공존한다. 어려울 때일수록 홍보를 더 적극적으로 해야 하는 이유다. 여건이 유리할 때만 내놓는 홍보자료는 신뢰를 얻기 어렵다.

주용석 경제부 기자 hoho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