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바이오사업을 한다는 것은 맨땅에 '헤딩'하는 것과 같습니다. 전임상을 비롯해 임상단계의 사소한 표준데이터가 필요할 때마다 전 세계 연구소를 기웃거려야 합니다. "(양윤선 메디포스트 대표)

국내 바이오사업을 미래 성장동력으로 치켜세우고 있지만,산업 인프라는 취약하기 그지없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주장이다. 국내 바이오벤처의 연구 · 개발(R&D) 성과가 점차 가시화되고 있는 가운데 취약한 인적 인프라는 사업화 단계를 지연시키거나 좌절시킬 수 있는 '잠재 리스크' 요인이 될 것이란 우려의 목소리도 높다. 바이오 · 제약분야는 R&D,임상시험,마케팅 단계별로 글로벌 분업구조를 형성하고 있지만,국내 업계는 안방에서도 협력모델을 구축하지 못하고 있다. 10년 전 불어닥쳤던 '묻지마'식 투자열기와 '황우석 사태'의 트라우마(정신적 외상) 때문이란 분석이 많다.

◆'끈' 떨어진 글로벌 네트워크

국내 대표적 바이오기업인 셀트리온은 올 들어 메디컬닥터(MD) 4명을 뽑기 위해 백방으로 수소문했지만 1명을 채용하는 데 만족해야 했다. 최고 수준의 채용조건에도 불구하고 MD들이 웬만하면 기업이나 연구소행을 꺼리고 있는 탓이다. 해외에서 인재를 유치하는 것도 여의치 않기는 마찬가지다. 해외 연구소나 글로벌 제약사 근무 경험이 있는 한인 출신의 과학자를 연구소장으로 영입하면 연구 성과도 높이고,글로벌 네트워크까지 확장할 수 있어 '일석이조(一石二鳥)'다. 그러나 녹십자 대웅제약 중외제약 유한양행 등 4개사 정도만 해외에서 한인 출신 R&D 전문가를 스카우트했을 정도다. 나머지는 여력이 안된다는 평가다.

현실이 이렇다보니 협업 · 분업 양상을 띠고 있는 글로벌 바이오산업의 트렌드와는 간극만 벌리고 있다는 분석이다. 예컨대 국내 연구자들이 기고하는 SCI(Science Citation Index)급 연구논문은 2009년 6151편에 달하는 등 꾸준히 늘었다. SCI는 미국 톰슨사이언티픽 회사가 과학기술분야 학술잡지에 게재된 논문의 색인을 수록한 데이터베이스.하지만 네이처 사이언스 셀 등 3대 과학잡지에 실리는 논문은 2009년 14건 등 연 평균 10여편으로 초라한 성적을 내고 있다.

◆2% 부족한 '클러스터'

바이오 · 제약 분야는 각국마다 상이한 규제가 많아 산업 자체가 진입장벽으로 통한다. 때문에 바이오산업은 그 어떤 산업보다 마케팅,상품화 단계에서 적용해야 하는 정보들이 '암묵지(tacit knowledge)'란 형태로 존재한다. 이런 암묵지는 지리적으로 인접한 지역에서 활발하게 교류되는 속성을 띤다. 미국 등 바이오산업 강국에서 바이오클러스터가 발전하고 있는 이유다.

한국에서도 수년 전부터 바이오클러스터 조성 필요성이 꾸준히 제기돼 왔지만,아직도 제대로 된 바이오단지가 없다. 바이오클러스터 조성 프로젝트가 대학-연구소-기업-관련 서비스를 아우를 수 있는 효율성보다는 지역이기주의에 묻혀버리기 때문이다. 현재 각 지방자치단체들의 유치경쟁으로 바이오클러스터를 표방한 단지만도 대덕연구단지,강원도 춘천바이오산업진흥원,진주바이오21센터,충북 보건의료산업종합지원센터 등 40여곳에 달한다.

하지만 대부분 바이오단지는 해당 지자체의 지나친 기대와 사업유치 선점경쟁 등으로 이해관계가 얽히고설켜 커뮤니티를 장점으로 하는 바이오클러스터의 실효성이 떨어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와 달리 미국의 경우 바이오 및 제약산업은 샌프란시스코와 보스턴,뉴저지 등 소수의 지역에 클러스터를 형성하고 있다. 이들 지역에는 풍부한 전문인력이 상주하고 있으며,자연스런 정보교류로 새로운 '암묵지'들이 재생산되고 있다. 한 바이오기업 대표는 "바이오클러스터 육성을 비롯해 바이오산업을 키울 로드맵이 없는 것이 문제"라며 "그러니 최대 규모 투자에도 국내 바이오산업이 제자리를 못 찾고 갈팡질팡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정부의 바이오투자는 지난해 1조4383억원을 투자하는 등 매년 20% 상당 늘리며 투자비중을 확대하고 있다. 2001년부터 누적 투자액은 7조9672억원으로 집계된다.

손성태 기자 mrhan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