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최대 철강 업체인 바오산강철(寶鋼)이 인천 또는 경기 지역에 차량용 강판 공장을 짓기 위해 부지를 물색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화학과 정보기술(IT) 분야의 중국 기업들도 한국 진출을 계획하고 있다. 상하이자동차가 2009년 초 쌍용자동차에서 철수한 이후 주춤했던 중국자본의 한국 투자가 재개되고 있는 모습이다.

한국이 미국,유럽연합(EU) 등과 잇따라 자유무역협정(FTA)에 서명하면서 한국을 글로벌 시장 진출거점으로 활용하려는 중국 기업들이 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한국'이라는 국가 브랜드를 활용해 시장 확대를 꾀하겠다는 전략이란 관측이다.

◆중국 기업의 '그린 필드' 투자

18일 업계에 따르면 바오산강철은 올초 실무진을 수차례 한국에 파견해 한국 법무법인과 공장 건설에 관한 각종 법률 문제를 조율한 것으로 알려졌다.

철강업계 관계자는 "초기 투자 규모는 1500만달러(163억원)이며 인천 · 경기지역을 중심으로 공장 부지를 알아보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 투자가 이뤄지기 위해선 중국 상무부 승인을 받아야 하지만 바오산강철 내부에선 올해 안에 투자를 확정짓기 위해 작업을 서두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바오산강철은 자동차용 강판,조선용 후판 등 고급 강재 생산에 주력하면서 생산 기지를 확대하는 중이다. 한국에 만들 공장에서 차량용 강판을 생산할 것으로 전해졌다.

업계 관계자는 "차량 강판은 완성차 업체로부터 품질 인증을 받아야 하는 등 진입장벽이 높기 때문에 당장 생산을 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며 "강재 가공센터부터 시작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화학업체인 중국 아베칼도 PVC필름 생산 공장을 짓기 위해 KOTRA를 통해 후보지를 찾고 있다. KOTRA 관계자는 "실무진들이 인천,경기도 등에서 물류 창고와 생산 공장 부지 몇 군데를 둘러 보고 있다"며 "새로 공장을 짓는 것이 어려울 땐 한국 업체를 통째로 인수하는 방안도 고려 중"이라고 전했다.

작년 9월 9500만달러를 들여 게임 개발업체 아이덴티티게임즈를 인수한 중국 대형 미디어그룹인 샨다는 또 다른 한국 소프트웨어업체에 대한 인수 · 합병(M&A)을 계획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게임업체 관계자는 "중국 업체들로선 가장 부족한 것이 콘텐츠"라며 "한류 붐의 활용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알고 아이덴티티 외에 다른 게임업체를 추가로 인수하기 위해 관계자들을 접촉하고 있다"고 말했다.

◆대만 기업도 대규모 투자 타진

중국의 대한(對韓) 투자는 작년까지 총 8억5000만달러로 중국이 해외에 투자한 돈의 0.5% 수준(KOTRA 추산)이다. 2009년 초 상하이자동차가 기술 유출 의심을 받으면서 쌍용차에서 손을 뗀 이후로는 사실상 한국에 대한 투자는 '제로'에 가까웠다.

한국이 미국,EU 등 거대 시장을 보유한 국가들과 연달아 FTA를 맺자 한국을 바라보는 중국 기업들의 시각이 달라졌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중국은 대만과 함께 세계 30대 경제국 가운데 유일하게 FTA를 단 한 건도 체결하지 않은 국가다.

중국 5위권 파이프 제조업체 화청파이프유한공사로부터 2200만달러를 투자받아 합작회사를 설립한 HCT&P의 나유식 부사장은 "중국 업체들이 한국이 세계 각국과 FTA를 체결한 점을 높이 평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HCT&P는 담수플랜트용 무계목 강관(이음매가 없는 강관) 제조업체로 생산 물량 대부분을 두산중공업삼성엔지니어링에 공급하기로 계약했을 정도로 기술력을 인정받고 있다. 중국업체로선 한국에 생산 기지를 지을 경우 브랜드 강화 효과에 기술 습득,사업 영역 확대라는 다중 효과를 거둘 수 있다는 얘기다.

중국뿐만 아니라 대만도 같은 이유로 한국 진출을 서두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KOTRA 관계자는 "중화총상회 등 대규모 경제 단체가 중국 기업을 포함해 100여개 업체들로 컨소시엄을 구성할 테니 한국 진출을 도와달라고 2009년 말부터 KOTRA에 지속적으로 요청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앞으로 이 같은 추세가 더 확산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글로벌 금융 위기를 겪으면서 미국,유럽 등의 재무적 투자 자본이 주춤한 사이 중국이 글로벌 투자 시장의 '큰손'으로 부상했기 때문이다.

☞ 바오산철강

중국 최대 철강업체로 4개의 고로와 열연 및 냉연공장 등을 갖고 있다. 연간 조강 생산능력은 세계 3위 규모인 3900만t으로 포스코(3100만t)보다 많다.

박동휘/이유정 기자 donghui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