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름값 인하정책을 쓸 때 휘발유뿐 아니라 벙커C유 가격 안정도 생각해 주십시오."(김해수 대한염직 대표)

"대기업들이 중소기업이 있는 업종에 참여하는 것을 막아 주십시오."(이의열 덕우실업 대표)

18일 서울 반포동 팔래스호텔에서 열린 최중경 지식경제부 장관(사진)과 섬유패션업계 대표 간 간담회는 참석자들의 이름표만 가리면 전체 중소기업 간담회로 착각할 만했다. 섬유 · 패션산업의 연간 매출 규모는 2008년 기준 39조원으로 국내 전체 산업의 약 3%에 불과하다. 하지만 섬유 · 패션 기업의 99%가 중소기업이다 보니 지경부가 내세운 동반성장 이슈에 민감한 반응을 보였을 뿐만 아니라 원자재 가격 상승,유류 가격 급등 등 최근 실물경제 동향에도 촉각을 곤두세우는 모습이었다.

지경부 장관이 직접 나서 업계 의견을 듣는 경우가 드물기 때문에 기업인과 참석 공무원들은 처음에 덕담으로 간담회를 시작했지만 업계 현안을 이야기할 때는 자못 날선 공방을 벌였다. 간담회가 끝난 뒤 한 공무원은 "업계 현안만 나올 줄 알았더니 지경부 부처 공무원이 모두 달려들어야 할 대표 이슈들이 다 나왔다"고 진땀을 흘렸다.

기업인들은 우선 기름값 인하 대책이 휘발유에만 치중돼 있다고 지적했다. 김해수 대표는 "염색업체들은 벙커C유를 이용해 만든 전력으로 염색을 한다"며 "정부가 휘발유 문제를 생각하는 만큼 벙커C유 등 산업용 기름의 가격 인하를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고 요청했다.

원자재 가격 상승도 경영 활동의 불안 요인으로 제기됐다. 박상태 성안 대표는 "최근 원자재 가격이 갑자기 오르다 보니 바이어들과 맺은 계약 가격에 원가를 반영할 시간적 여유가 없다"며 "원자재 인상분을 시장 가격에 반영할 수 있도록 정부가 도와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최근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회가 소위원회 단계에서 부결시킨 한 · 유럽연합(EU) 자유무역협정(FTA)을 조속히 처리해 달라는 요구도 나왔다. 산업용 섬유를 생산하는 웰크론의 이영규 대표는 "패션 관련 수출 기업들은 한 · EU FTA에 큰 기대를 걸고 있다"며 "최 장관이 직접 (국회의원들을) 설득해 달라"고 주문했다. 반면 한 · 중 FTA에 대해선 "섬유업계의 막대한 피해가 우려된다"며 "안 할 순 없겠지만 최대한 시기를 늦춰달라"고 말했다.

이의열 덕우실업 대표는 대기업의 직물산업 진출을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최근 대기업이 염색 · 가공 업종에도 관심을 갖고 있는데 중소기업이 안정적으로 발전하기 위해선 대기업이 중소기업 업종에 참여하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고 목청을 높였다.

하지만 장관을 비롯한 지경부 관계자들은 이들의 요구에 대한 즉답을 피했다. 간담회에서 제기된 것 대부분이 다른 부처와 협의를 거쳐야 할 사안이었기 때문이다. 오히려 기업인들의 요구가 과하다는 느낌이 들었던지 남기만 지경부 주력산업정책관의 경우 답변에 앞서 "하고 싶은 말씀 다 하신 거죠?"라며 다소 까칠하게(?) 말했다. 최 장관도 최대한 말을 아끼는 기색이었다. 구체적으로 답변하기엔 제기된 사안들의 휘발성이 강하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지경부는 "한 번 더 모여 협의하는 자리를 갖자,추후에 조사를 더 해보자"는 등의 말로 기업인들을 다독이며 간담회를 마무리했다.

박신영/김동욱 기자 nyus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