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계의 후발주자들은 어떻게 해야 생존할 수 있을까. 데이비드 아커 UC버클리 하스경영대학원 명예교수는 '브랜드 연관성(brand relevance)'이란 해법을 제시한다. 이미 경쟁이 치열한 분야(레드오션) 대신 연관 하위 분야를 개발해 시너지를 창출하면서도 경쟁자가 없는 시장을 선점하라는 제안이다. 그는 브랜드에 대한 개념조차 익숙지 않던 1991년 '브랜드 자산(brand equity · 개성,혁신,충성도 등을 두루 포함한 브랜드의 힘)'이라는 개념을 소개해 브랜드 가치를 측정할 수 있다고 주창했다. 아커 교수는 국내 브랜드 컨설팅회사인 브랜드앤컴퍼니와 손잡고 '브랜드 리더십' '브랜드 자산의 전략적 경영' 등의 저서를 펴내기도 했다. 브랜드 연관성에 대해 그와 이메일 인터뷰를 가졌다.

▼브랜드 연관성이란 용어가 생소한데.

"기업이 기존 브랜드와 관련이 있는 차별화한 하위 분야를 창출하고,경쟁 브랜드를 도태시켜 시장 우위를 차지하는 전략을 의미합니다. 브랜드 연관성은 소비자들이 새로운 분야의 제품을 인지할 때,실질적인 구매 수요가 생길 때 발생합니다. 중요한 점은 제품이 같은 분야에서 타사 브랜드와 '선호도' 경쟁을 하는 것이 아니라 기업이 만들어낸 새로운 분야가 다른 분야보다 좋다고 인식되는 '연관성' 경쟁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

▼브랜드 연관성을 구축했을 때 장점은.

"브랜드가 성장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방법은 경쟁자가 없거나,경쟁자가 맥을 못추는 분야를 선점하는 것입니다. 레드오션에서의 브랜드 선호도 경쟁은 기업의 성장에 거의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이미 시장이 안착한 분야에서는 후발주자가 혁신적인 제품을 출시하고 마케팅에 돈을 쏟아붓는다고 해도 점유율이 쉽게 높아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시장 진입자가 '원조'가 된다면 얘기가 달라집니다. 새로운 시장에서 '소비자가 갈아탈 수밖에 없는(must haves)' 강점을 앞세운다면 시장 지배자로 올라설 수 있습니다. 이제 기업이 브랜드를 파는 시대가 아니라 '새로운 분야'를 파는 시대가 온 것입니다. "

▼'원조'라면 처음이 돼라는 뜻인가요.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브랜드 개척자'는 실패할 수도 있습니다. 대부분의 시장 지배적 브랜드는 개척자들의 한계를 관찰한 뒤 한층 향상된 제품으로 소비자를 사로잡습니다. 소니는 애플이 아이팟을 내놓기 2년 전,마이크로소프트(MS)는 10년 전에 비슷한 제품을 출시했지만 실패했습니다. 새로운 분야의 개념을 소비자들에게 이해시키고 안착하는 데 실패했기 때문입니다. 늦었다고 낙담할 필요가 없다는 말이죠."

▼새로운 분야를 만들 때 주의할 점은.

"크게 세 가지입니다. 우선 회사 입장에서 새로운 분야 제품을 실제로 내놓을 수 있는지,또 기존 브랜드와 시너지를 낼 수 있는지 살펴야 합니다. 둘째로 새로운 분야가 소비자들의 구매 습관을 바꿀 수 있을 만큼 가치가 있고 성장 가능성이 있는지 검토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지속성을 고려해야 합니다. "

▼연관성 전쟁에서 성공한 예는.

"일본 '아사히 수퍼드라이'가 대표적입니다. 1970~1980년대 중반은 기린의 시대였습니다. 반면 아사히는 1986년 점유율이 10% 밑으로 추락했습니다. 아사히는 1987년 뒷맛이 깔끔하고 상쾌한 맛을 내는 수퍼드라이로 반격 카드를 내놨습니다. 알코올 함유량을 높이고 단맛을 줄였죠.라벨과 광고 등을 통해 서구적인 이미지도 구축했습니다. '정통 드라이 맥주','젊은이를 위한 서구적인 맥주'라는 새로운 분야를 창조한 것입니다. 결국 아사히는 1988년 점유율 20%를 넘어섰고 2001년 1위 브랜드로 등극했습니다. "

▼트렌드를 잘 읽어야 할 것 같군요.

"트렌드에 반응하는 자(trend responder)가 아니라 트렌드를 이끄는 자(trend driver)가 돼야 합니다. 트렌드를 이끌기 위해서는 소비자 구매 동기의 변화나 유통 채널 및 시장의 변화,경쟁사의 전략,기술의 발전 정도 등을 모니터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춰야 합니다. 전도 유망한 분야를 발견했을 때 거기에 전념할 수 있는 조직과 자원을 마련해야 합니다. 새로운 기회를 포착했을 때 빠르고 유연하게 반응하는 기업 문화도 필요합니다. "

▼많은 투자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물론입니다. 예산 인력 시간 등 많은 투자가 필요하지만,충분히 그럴 가치가 있습니다. 크라이슬러의 '미니밴'이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1970년대 말 자동차업체 포드의 대표였던 리 아이아코카와 엔지니어 할 스페리히는 미니밴 개발을 주장했다는 이유로 해고됐습니다. 그러자 크라이슬러로 옮겼죠.크라이슬러는 대형 밴 시장의 45%를 점유하고 있었던 반면 포드가 선점한 왜건 시장에서는 부진을 겪고 있었습니다. 크라이슬러가 파산 상태였음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분야인 미니밴 개발에 착수했습니다. 커다란 모험이었죠.결과는 대박이었습니다. "

▼경쟁 기업에 대한 장벽은 어떻게 쌓나.

"우선 새로운 분야 제품이 원조 브랜드로 자리잡아야 합니다. 그 뒤 제품을 꾸준히 업그레이드시켜 경쟁자가 따라오지 못하도록 '움직이는(혁신하는) 타깃'이 돼야 합니다. 이후 신제품이 주는 효용을 강조하거나 브랜드와 고객 간 정서적 관계를 강화하는 등 마케팅을 통해 충성도 높은 고객을 확장해야 합니다. "

▼브랜드가 연관성을 잃는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매출이 감소하면 연관성을 잃었다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하던 일에 집중해 더 좋은 제품을 만들거나,기존 분야를 버리고 새로운 도전을 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두 가지 예를 들겠습니다. 질레트와 맥도날드입니다. 1930년대 전자면도기가 등장했을 때 업계는 안전면도기가 곧 시장에서 사라질 것이라고 예상했습니다. 전자면도기를 이용하면 상처도 덜 나고,더 빨리 면도를 할 수 있었기 때문이죠. 그러나 질레트는 1970년대 '트랙Ⅱ',2010년 '퓨전파워' 등 시장의 기대를 뛰어넘는 제품을 선보여 이 같은 우려를 뒤집었습니다. 맥도날드는 스타벅스가 아침 메뉴 사업에 위협으로 떠오르자 2007년 '맥카페'라는 새로운 분야에 도전했습니다. 품질 관리 및 마케팅을 통해 맥카페는 소비자들에게 스타벅스에 경쟁할 만한 상대로 떠올랐습니다. "

강유현 기자 yh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