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 Biz School] "제품 대신 경험을 팔아라"…'52세의 바비인형' 식지않는 인기
늙지 않는 여인이 있다. 올해로 52세인 그녀는 여전히 소녀 같은 피부를 갖고 있다. 빛나는 파란 눈동자,긴 금발의 생머리도 변치 않았다. 그녀의 이름은 '바버라 밀리센트 로버츠'다. 사람들은 '바비(Barbie)인형'이라고 부른다.

이 인형은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인형 가운데 하나다. 미국에서는 여자 어린이 한 명당 평균 8개의 바비인형을 갖고 있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전 세계 145개국에서 팔리는 바비인형의 국적은 45개가 넘는다.

바비인형 덕분에 제조업체 마텔(Mattel)은 세계 완구업체 1위 자리에 올랐다. 금융위기 폭풍이 채 가시지 않은 2009년,바비인형은 그 진가를 발휘했다. 미국에서 마텔의 다른 제품은 모두 매출이 감소했지만 바비인형만 4% 증가했다. 지난 15일 발표한 1분기 실적도 좋았다. 세계 완구 시장에서 바비인형 판매량은 14% 늘었다. 매출은 작년 같은 기간에 비해 8% 증가한 9억5200만달러를 기록했다. 바비인형의 장기 인기 비결은 무엇일까.

◆옷과 액세서리가 수익의 원천

최근 네슬레가 내놓은 커피머신 가운데 인기를 끄는 '돌체구스토'라는 제품이 있다. 인기 비결은 낮은 가격과 편리성이다. 기계 가격은 15만~25만원 수준이다. 100만원 이하 제품이 별로 없는 시장에서 돋보이는 가격이다. 커피는 캡슐에 들어가 있다. 굳이 원두를 갈아서 넣을 필요가 없다. 네슬레는 이 캡슐로 돈을 번다. 다양한 커피를 다 캡슐로 만들어 판다. 가격은 커피 한 잔 나오는 캡슐 한 개 가격이 1000원꼴로 비싸다. 그러나 편리성이 더 많은 소비를 유발한다. 본체는 싸게 팔고,소모품 또는 아이템을 팔아 수익을 확보하는 전략이다. 마텔은 이미 50여년 전 바비인형에 이 비즈니스 모델을 적용했다. 단순히 인형을 판매하는 것이 아니라 '경험'을 판매하겠다는 취지였다. 어린이들이 옷을 갈아 입힐 수도 있고,빗질도 할 수 있게 해줬다. 손으로 만지작거리면서 스스로 자극과 기쁨을 얻는 '경험'을 소비하게 만든 것이다.

[한경 Biz School] "제품 대신 경험을 팔아라"…'52세의 바비인형' 식지않는 인기
마텔은 전략적으로 바비인형 자체 가격은 5~6달러로 낮췄다. 대신 4달러짜리 티셔츠에서 20달러에 이르는 드레스는 물론 다양한 액세서리를 팔아 수익을 내고 있다. 매년 100가지가 넘는 의상이 쏟아져 나온다.

변신과 포트폴리오 확장도 인기 유지에 한몫했다. 바비는 여자월드컵 축구선수로,공주로,치어리더,대통령후보,치과의사로 끊임없이 변신을 거듭했다. 마텔은 외로운 바비를 위해 '켄(Ken)'이라는 남자친구도 만들어줬다. 남미인,아시아인,흑인 친구는 물론 휠체어를 탄 친구도 만들어줬다. 경영컨설턴트인 스튜어트 크레이너는 다양한 바비의 친구와 동생들을 보고 "바비라는 브랜드를 확장시킨 전략이 성공했다"고 평가했다.

마텔은 바비에만 머물지 않았다. 완구산업은 타이밍이 중요하다는 걸 알고 있었다. 애니메이션이 성공을 하면 곧장 이를 완구로 만들어냈다. 마텔이 생산 중인 캐릭터 제품은 토이스토리,배트맨 등 60여종에 이른다. 최근에는 한국에서만 1300만여명의 관객을 동원한 영화 아바타의 캐릭터 상품을 내놓았다. 또 미국 유명 레슬링 쇼 프로그램인 WWE 캐릭터 제품도 큰 인기를 얻고 있다. 작년 매출 증가에는 토이스토리와 WWE 제품이 크게 기여했다.

◆리콜은 진심을 홍보하는 수단

성공한 기업의 역사는 위기 극복의 역사다. 마텔도 마찬가지다. 2000년대 들어 가장 큰 위기는 2007년 찾아왔다. 중국에서 생산한 장난감에서 기준치 이상의 납 성분이 검출됐다. 당시 마텔은 전체 제품의 65%를 중국에서 생산하고 있었다. 마텔은 8월2일부터 9월5일까지 한 달여 만에 세 차례에 걸쳐 리콜을 실시했다. 마텔의 브랜드 이미지는 추락했다. 판매는 급감하고 주가도 폭락했다. 경쟁 업체들은 "우리 제품에는 납 성분이 들어 있지 않습니다"라는 광고를 내걸고 공격을 시작했다.

그러나 마텔은 리콜을 비용의 문제로 생각하지 않았다. 진심으로 사과하고 안전을 위한 노력을 보여줬다. 리콜 사실을 소비자들에게 적극적으로 알리기 위해 야후 같은 유명 포털 사이트에 리콜 제품 사진을 올리기도 했다. 마텔의 리콜 웹사이트는 웬만한 광고보다도 훌륭하다는 평가가 나올 정도였다. 또 리콜 제품을 갖고 있는 고객들이 양식을 다운로드 받아 수신자 부담으로 우편 발송이 가능하도록 했다.

세 번째 리콜이 끝난 9월11일 로버트 에커트 마텔 CEO는 월스트리트저널에 성명서를 발표했다. "아이 네 명을 가진 아빠로서 어떤 작은 문제라도 그냥 넘어가지 않겠습니다. 아버지께서 제게 하신 '신뢰를 얻기 위해서는 말이 아니라 행동을 보여줘야 한다'는 말을 기억합니다. 행동으로 신뢰를 다시 찾아오겠습니다. " 그 말은 현실이 됐다. 그해 4분기 마텔의 순이익은 3억2850만달러로 전년 동기(2억8640만달러)에 비해 15% 증가했다.

◆한박자 빠른 위기 대응

2008년 9월 리먼브러더스 파산 신청으로 글로벌 금융위기가 전 세계에 확산되기 시작했다. 형편이 어려워진 소비자들이 장난감 구매를 줄일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었다. 마텔은 곧장 대응책을 내놓았다. 명칭은 '글로벌 비용 리더십 프로그램'.△인력 1000명 감원 △생산원가 절감 △해외 법인 통합 등이 주요 내용이었다. 내용은 일반적 위기대응의 범주를 벗어나지 않았지만 행동은 신속했다. 마텔의 내부자료에 따르면 이 계획은 2008년 말 거의 마무리됐다. 대부분 기업들이 2008년 말 구조조정 계획을 세우고 2009년 집행한 것보다 한발 빠른 행보였다. 구조조정의 효과는 곧바로 2009년에 나타났다. 매출은 54억1000만달러로 2008년(59억3000만달러)에 비해 8% 줄었지만 영업이익은 7억3111억달러로 13.5% 늘었다. 영업이익률도 9.2%에서 13.5%로 상승했다.

정성택 기자 naiv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