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장님 휴대폰 번호요? 직원들 아무도 모릅니다. "

서종남 한국거래소 코스닥본부 공시제도총괄팀장(49 · 사진)의 개인 신상은 거래소 직원들에게도 비밀에 부쳐져 있다. 2009년 2월부터 시행된 코스닥기업 퇴출제도(상장폐지 실질심사제)의 도입과 운영 실무를 서 팀장이 주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의 손을 거쳐 상장폐지된 코스닥 상장사는 2009년 16개,작년 28개다. 당연히 퇴출된 회사 관계자와 주주들의 원성이 빗발쳤다. 여의도 한국거래소 앞에 서 팀장의 실명을 거명하며 규탄하는 플래카드가 내걸리기도 했다. 서 팀장의 개인정보 유출에 거래소 측이 민감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코스닥 한계기업들 사이에서 '저승사자'로 불렸던 서 팀장은 오는 25일부터 기업공개(IPO) 업무를 담당하는 상장총괄팀장으로 자리를 옮긴다. 저승사자에서 산파역으로 담당을 바꾸게 된 그는 19일 기자와 만나 "1030개 코스닥 상장사의 생사여부를 결정하는 일을 해온 만큼 지난 2년간 상장사 임직원은 물론 지인들과 술자리를 갖는 것도 피했다"고 말했다. 불필요한 오해를 살 수 있는 여지를 가능한 한 줄여야 했다는 설명이다.

그는 "횡령으로 회사를 거덜낸 뒤 상장폐지시키고 달아나는 세력들을 보면 참기 어려웠다"며 "분통이 터져 혼자 술잔을 기울인 적도 많았다"고 술회했다. 횡령꾼들이 고의로 상장폐지시킨 S기업의 사례를 들면서 "횡령사실을 숨기기 위해 필요한 감사서류를 일부러 제출하지 않는 수법으로 회사를 상장폐지시키고 회사의 남은 자산까지 매각했다"며 "투자자들은 피해를 입는데 거래소에서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어 가슴이 아팠다"고 말했다.

2년여간 실질심사를 이끌며 가장 힘들었던 일로 서 팀장은 '설득'을 들었다. 그는 "상장폐지와 관련된 이해관계자들에게 해당 기업이 상장폐지될 수밖에 없는 이유를 납득시키는 것이 가장 어려웠다"며 "절박한 심정으로 거래소 앞까지 와서 시위를 벌이는 주주들을 일일이 만나 설명하고 설득했다"고 말했다. '저승사자'라는 별명에 대해선 "누군가는 맡아야 했을 일"이라며 "죽을 죄가 있으니 죽는 거지 저승사자가 있어서 죽는 것은 아니지 않나"라고 되물었다.

서 팀장은 건국대 법학과를 나와 1988년 거래소에 입사해 주로 상장과 공시업무 파트에서 일했다. 직장 생활을 하면서 법학 박사학위까지 따낸 학구파다. 그는 "코스닥시장의 존속을 위해 시장 투명성 확보와 투자자보호는 지속돼야 한다"며 "2년간 수행해온 정화 기능을 생각할 때 실질심사는 앞으로도 당분간은 필요한 제도이며 나는 잠깐 악역을 맡았을 뿐"이라고 덧붙였다.

노경목 기자 autonom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