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확보한 기술력이나 거래처만으로도 새로운 사업 진출은 어렵지 않습니다. 중소기업들은 시장을 좀 더 넓게 볼 필요가 있어요. "

경북 구미시 시미동에 있는 ㈜경우는 국내 LCD(액정디스플레이) TV · 모니터 시장의 관행을 깬 기업으로 유명하다. 원천 기술이나 사업 정보가 외부로 빠져나가는 걸 막기 위해 LCD 제조 기업들은 대개 업체 한 곳만 선택해 협력 관계를 맺는다. 이 때문에 LCD의 냉음극형광램프(CCFL)에 들어가는 전극을 만드는 국내 업체는 10곳이 넘지만 복수의 대기업에 제품을 공급하는 중소기업은 ㈜경우가 유일하다. 이 회사는 현재 삼성전자 LCD TV와 LG전자 컴퓨터 모니터에 쓰이는 CCFL 전극 부품을 50% 이상 납품하고 있다. 문제희 대표(44)는 "TV 브라운관 사업을 할 때부터 거래 기업의 정보는 철저히 보호했기 때문에 새로운 협력 관계를 맺을 때도 신뢰를 얻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1989년 설립된 이 회사는 TV 브라운관에 들어가는 전자총(전자 빔을 만드는 장치) 부품업체로 10여년 동안 독보적인 위치를 지켰다. 1990년대 국내 가전시장을 주도했던 대우일렉트로닉스(옛 대우전자)에 전자총 핵심 소재 히터(heater)와 캐소드(cathode)를 전량 공급할 정도로 성공한 알짜기업이었다. 하지만 2004년부터 LCD TV 보급이 속도를 내면서 브라운관 사업은 쪼그라들었다. 문 대표는 새로운 사업에 눈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그가 LCD 시장에 진출한다고 했을 때 모든 임직원들은 반대했다. 당시 브라운관 시장은 국내에선 완전히 죽었지만 동남아와 아프리카 지역에선 수요가 꾸준했기 때문이다.

문 대표는 "투자 여력이 있을 때 새 사업에 진출하지 않으면 기회는 다시 찾아오지 않는다"며 LCD 쪽에 발을 담갔다. 이 회사가 LCD 사업에 뛰어들었을 당시 이미 10여개 업체가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었다. 문 대표는 "20년 가까이 브라운관 전자총 부품만 만든 회사에 대한 대기업들의 신뢰가 컸던 데다 중소기업진흥공단에서 사업 전환 자금으로 받은 15억원으로 CCFL 전극 개발에 전념할 수 있었기 때문에 성공할 자신이 있었다"고 말했다.

이 회사의 매출액은 사업 전환을 하기 전인 2007년 52억원에서 지난해 155억원으로 3배가량 늘었다. 이 중 3분의 2에 해당하는 100억원이 사업 전환 후 생산한 CCFL 전극 부품에서 나왔다. 대기업들의 주문량이 꾸준히 늘어 올해는 230억원의 매출을 올릴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문 대표는 여기에서 멈추지 않고 올해부터 100억원을 투자해 산화인듐주석(ITO) 글라스 사업에도 새로 진출할 예정이다. 그는 "중소기업 최고경영자(CEO) 대부분이 당장 영위하고 있는 사업에만 골몰한다"며 "한걸음만 떨어져 보면 지금 갖고 있는 기술로도 다른 사업을 시작할 기회는 무궁무진하다"고 말했다.

구미=하헌형 기자 hh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