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대 들어 자라(기업명 인디텍스),H&M,유니클로(기업명 패스트리테일링) 등 패스트패션(fast fashion) 브랜드가 패션산업의 새로운 강자로 떠올랐다.

패스트패션이란 주문 즉시 먹을 수 있는 패스트푸드처럼 최신 유행을 디자인에 반영,빠르게 생산 · 판매하는 중저가 의류를 말한다.

그동안 중저가 패션산업은 '저성장 · 저수익' 산업으로 인식됐다. 하지만 글로벌 패스트패션 기업들은 고정관념을 깨고 최근 5년간 매출을 연 평균 10% 이상 늘렸고 글로벌 금융위기 속에서도 15% 이상의 영업이익률을 기록했다.

패스트패션 기업의 성공 요인은 패션산업의 환경 변화를 포착해 기존 통념을 깬 역(逆)발상에 있다. 과거 패션업계의 주된 생산 방식은 시즌 전에 트렌드와 수요를 예측,디자인을 정하고 생산량을 맞추는 '기획생산'이었다. 이 방식은 사전 대량 생산을 통해 규모의 경제를 실현할 수 있는 장점이 있지만,시장 트렌드와 수요가 예상과 달라지면 판매가 줄고 재고가 늘어날 위험이 있다.

패스트패션 기업은 시장 환경에 따라 디자인과 생산량을 수시로 바꾸는 '반응생산' 방식을 통해 기획생산의 약점을 극복했다. 인디텍스는 신제품 기획부터 매장 배송까지 전 과정을 2주 만에 완료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했다.

이 회사는 생산량의 15%만을 사전 예측에 따라 만들고,85%는 고객 반응과 시장 상황을 살펴가며 생산한다.

패스트패션 기업은 전통적으로 로컬 비즈니스였던 패션산업의 한계를 벗어나 글로벌 시장에 적극적으로 진출했다. 이들 기업은 인력 구조와 운영 시스템을 글로벌화하는 한편 한국 중국 등 신흥시장을 집중 공략했다. 해외 시장에서는 비싼 임대료를 감수하고 서울 명동과 상하이 신천지 등 유동인구가 많고 젊은층이 몰려드는 핵심 상권을 공략해 브랜드 인지도를 높였다.

패스트패션 기업은 유명 디자이너 브랜드를 모방하는 기존 패션업체들과 달리 일반 대중의 트렌드를 상시적으로 분석해 신상품에 반영,'트렌드 리더(trend leader)'로서의 위상을 확립했다.

매체 광고에 의존하지 않고 고객과의 접점인 매장의 기능을 강화,공간 중심 마케팅을 펼치는 것도 패스트패션 기업의 특징이다. 이들 기업은 상품 진열 주기를 단축해 고객이 언제 오더라도 신선한 느낌을 받을 수 있도록 했고,고객의 동선과 구매 습관을 과학적으로 분석해 매장 내부 디자인에 활용했다.

패스트패션 기업들의 성공은 패션산업뿐만 아니라 '저성장 · 저수익'에 직면한 다른 업종의 기업에도 수많은 교훈을 준다. 환경 변화에 맞춰 사업 방식을 재정립하려는 기업은 우선 변화에 신속히 대응할 수 있도록 가치사슬 전반을 재점검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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