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좁은 방에서 들었다고도 하고,듣지 못했다고도 한다.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5명씩 마주 앉았기 때문에 작은 목소리도 들렸을 터인데 말이다.

지난 18일 '대책반장'으로 불리는 김석동 금융위원장과 '종결자'를 지향하는 권혁세 금융감독원장이 5대 금융지주회사 회장들과 가진 비공개 회의에서 나온 것으로 보도된 '배드뱅크(bad bank)'얘기다. 권 원장은 이날 회의에서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채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으로 "유암코와 비슷한 배드뱅크를 설립하는 것을 실무적으로 추진하고 있으니 회장님들이 관심을 가져달라"고 말했다. 옆방에서도 이 말은 들렸다.

그런데 회의 직후 이해되지 않는 상황이 벌어졌다. 회의장을 나온 김 위원장에게 묻기 위해 기자들은 엘리베이터에 몸을 밀어넣었다. "배드뱅크 얘기가 나왔습니까"라는 물음에 그는 "그런 얘기는 없었어요"라고 잘라말했다. 승용차에 올라타기 직전에 "정말 배드뱅크라는 말이 안 나왔나요"라고 다시 묻자 "없었는데…"라고 답했다.

이날 회의엔 금융위에서 사무처장과 대변인,그리고 실무 과장이 참석했다. 금감원에선 부원장보가 배석했다. 이들에게 확인을 했다. 그런 언급이 있었다는 사람이 2명,없었다는 사람이 2명이었다.

사실 여부만 확인해 주면 될 일을 왜 이렇게 진실게임으로 몰아가는 걸까. 금융당국 내부에선 권 원장의 발언을 금융위가 속도조절하려는 것 아니냐는 해석을 내놓고 있다. 5대 금융지주 회장들을 소집한 자리에서 은행의 출자가 필수인 배드뱅크가 언급됐다는 사실만으로 은행의 팔을 비튼 것 아니냐는 '관치논란'에 휘말릴 소지가 있다는 우려도 있었을 것이다. 금융위와 금감원 간에 충분한 사전 논의가 이뤄지지 않은 상황에서 불쑥 나온 얘기라 김 위원장이 당황했을 수도 있다.

어떤 경우라고 해도 사실 자체를 부인해선 곤란하다. 권 원장의 발언에 회장들이 대꾸하지 않았다고 해서 '논의'가 없었다는 식으로 해명하는 것은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격이다. 이런 불협화음 때문에 '대책반장'과 '종결자' 사이에 조율이 잘 안 된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이 아닐까.

류시훈 경제부 기자 bad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