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주비료는 현재 산업계에서 사라진 이름이지만 한국 화학산업의 요람이었다. 한국은 산업화를 화학공업에서 시작했다. 철강 그리고 조선,자동차,기계,생활가전이 뒤를 이어 오늘날 현대 산업 국가가 됐다. 충주비료공장은 어쩌면 한국 현대화의 시발점이리라.

독립국가 건설 직후인 1949년 국세 총 수입은 고작 1200만원이었다고 한다. 국가살림,국방비 거의 전액을 유엔과 미국 원조에 의존했다. 1950년대 1인당 연간 국민소득은 50달러 수준이었다. 식량 부족은 말할 것도 없고 과일,야채 등 먹을거리 자체가 태부족한 절대빈곤 상황이었다. 춘궁기에는 말 그대로 초근목피로 연명했다. 이런 상황에서 가장 우선적으로 필요한 것이 무엇일까. 화학비료다. 식량을 증산하고 과일과 야채를 가꿀 질소 비료였다. 미국 원조로 화학비료 공장을 지었다. 그게 바로 충주비료공장이다.

충주는 중원의 땅이다. 남한에서 어딜 가나 가장 가까운 거리다. 또 남한강의 물을 바로 활용할 수 있다. 이렇게 하여 한국 최초로 현대화된 화학 비료 공장이 가동되기 시작한다. 이곳의 공장 운전 기술,거대장치와 설비의 유지보수,자동화 설비,공장 건설 경험 등이 뒤이어 타산업까지 확산돼 갔다. 충주공장(제일비료)은 영남화학(3비),진해화학(4비),충주신공장(6비),남해화학(7비)의 건설 주체가 된다. 또 한국 최초의 석유화학단지인 울산석유화학단지에 당시의 한양화학,동서석유화학,한국카프로락탐 지원공단을 건설하고 이어 1970년대 중화학공업 핵심사업으로 여수석유화학단지에 들어선 당시 호남에틸렌,호남석유화학의 건설 주체가 되기도 했다. 우리의 화학비료사업은 아쉽게도 현재는 남해화학만 남고 소멸했다. 그러나 그곳에서 일했던 많은 사람들이 한국 기술 인맥의 저변을 이루고 있다.

반면에 석유화학산업은 그 후 민영화됐고 많은 민간기업이 투자,성장시켜 세계 제5위까지 확대 발전되었다. 미국 중국 사우디 일본 한국 순이다. 유럽 강국도,대국도 우리가 앞질렀다. 작년 한국 석유화학산업은 매출 약 69조원을 웃돌았다. 또 다른 산업 소재의 한 축인 철강산업보다 더 큰 산업이다. 세계에는 200여개의 나라가 있고 그 중 한국은 국토면적이 세계 100위권이며,인구는 26위 전후다. 그러나 현대산업 분야에서는 세계 1,2위를 다투는 조선,반도체가 있고 5,6위권에는 석유화학,철강,정유,자동차산업 등이 있다. 이 근저에는 50년 전 충주비료공장의 기술인력이 있었다. 지금은 충주호가 만들어지고 주변은 완전히 상전벽해가 되었다. 그 옛날 충주공장의 요소제립탑은 아직도 기념물로 남아 있다. 집사람 고향이 그곳이라 가끔 충주에 들른다. 제립탑을 보면 신입사원 시절 능숙했던 선배와 동료들의 옛 모습,당시 목행,남한강달천과 합수머리 그리고 탄금대 등의 산천풍경이 아스라히 새롭게 다가온다.

정범식 < 호남석유화학 대표 bschong@lottechem.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