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 개발은 막대한 자금과 시간을 쏟아붓고도 실패하는 사례가 많다. 자금력과 기술력을 갖춘 거대 다국적 제약사가 아니면 신약 개발에 잘 나서지 않는다. 국내 제약사들이 대부분 제네릭(특허 기간이 끝난 의약품의 복제약)에 집중하는 이유다.

김선진 LG생명과학 기술연구원 제형 · 공정팀 부장(46)이 개발한 '1주일에 한 번 맞는 성장호르몬 주사제(SR-hGH)'는 이런 통념을 깬 신약이다. 현재 시중에 나와 있는 모든 성장호르몬제는 하루에 한 번 주사를 맞아야 한다. 환자 입장에서는 불편할 수밖에 없다. 주사 바늘에 거부감을 느끼는 환자라면 더 그렇다.

LG생명과학의 성장호르몬제는 1주일에 한 번만 맞아도 똑같은 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 게 특징이다. '그게 뭐 어렵나'라고 생각하기 쉽다.

김 부장은 "한 번 주사를 맞을 때 몸 속에 주입하는 1주일 분량의 약물이 7일 동안 매일 고르게 약효를 발휘할 수 있도록 약물의 방출 속도를 제어해야 한다"며 "미국의 세계적 제약사인 제넨텍이 과거 비슷한 제품 개발을 시도하다 두손을 든 기술"이라고 말했다.

김 부장도 신약 개발 과정에서 어려움을 겪었다. 그는 "베낄 만한 기술이나 가이드라인이 없었다"며 "기술 개발을 하면서 '콜럼버스의 달걀' 같은 경험을 수없이 거쳐야 했다"고 회고했다.

LG생명과학이 처음 신약 개발을 시작한 것은 1996년 1월이다. 이후 2007년 '디클라제'라는 이름으로 성인용 성장호르몬제의 국내 판매 허가를 취득했고 2008년 소아용 성장호르몬제 '유트로핀 플러스'를 국내 시장에 내놨다. 연구 · 개발(R&D)에 매달린 지 11년 뒤에야 가시적인 성과가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김 부장은 "의약품은 약효도 약효지만,무엇보다 안전하느냐 아니냐가 중요하다"며 "먼저 동물 대상으로 사전 임상시험을 끝낸 뒤 사람을 대상으로 한 본 임상으로 옮겨가야 하기 때문에 막대한 비용과 시간이 들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심적 부담도 컸다. LG생명과학이 신약 개발에 투입한 자금은 733억원이다. 실패하면 연구 · 개발비는 물론 십수년의 시간과 노력이 모두 물거품이 될 수 있다. 그는 "연구를 시작한 뒤 3년가량은 회사에서도 본격적으로 개발비를 쏟아부어야 하나,말아야 하나를 놓고 상당히 고민을 했다"고 말했다.

신약의 매출은 2008년 42억원,2009년 50억원,지난해에는 116억원으로 늘었다. 회사 측은 성장 잠재력이 기존 매출을 능가할 것으로 기대했다. 의약품은 환자가 기존에 쓰던 제품을 계속 사용하는 경향이 있어 신약이 나오더라도 단번에 시장 판세가 바뀌지 않지만 한번 약효가 검증되고 입소문을 타면 매출이 비약적으로 늘어날 수 있다는 설명이다.

LG생명과학은 세계 시장 진출도 추진하고 있다. 지난해 미국 식품의약국(FDA)에 성인용 성장호르몬 주사제의 판매 허가를 신청했고 내년 초쯤 승인이 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올해는 소아용 성장호르몬제 판매 허가 신청서를 FDA에 낼 계획이다.

지금까지 FDA 승인을 받은 국산 의약품은 팩티브(항생제)와 하루 한 번 맞아야 하는 성장호르몬 주사제,단 두 건뿐이다. 둘 다 LG생명과학 제품이다. 이번에 개발한 신약이 판매 허가를 받으면 국내에서 세 번째 'FDA 승인 신약'이 탄생하는 것이다.

현재 전 세계 성장호르몬제 시장 규모는 연간 25억달러(2조5000억원)에 달한다. LG생명과학은 5년 뒤 세계 시장의 50%를 차지할 것으로 예상했다. 김 부장은 "다국적 제약사인 화이자가 현재 유사한 제품을 개발 중이지만 아직까지 임상 초기 단계여서 향후 5년간은 경쟁자가 없다"고 시장 확대에 자신감을 보였다.

제7회 으뜸기술상 심사위원들도 김 부장을 최우수상 수상자로 선정하면서 "해외 제약사가 포기한 기술 개발에 성공했고 매일 주사를 맞아야 하는 불편을 해소했다"며 "시장성이 좋다"고 평가했다.

김 부장은 서울대 동물자원학과와 연세대 대학원 생화학과를 졸업한 뒤 LG생명과학에서 1996년부터 성장호르몬제 연구에 참여했다. 그는 "대학은 기초연구에 강하지만 회사 차원에서 실제 시장에 팔리는 의약품을 만드는 것은 그것(기초연구)과는 다르다"며 R&D의 경제성과 시장성을 강조했다.

주용석 기자 hoho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