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자동차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제너럴모터스(GM) 포드 BMW 등 글로벌 자동차업체에 핵심 부품인 2차전지를 공급하는 LG화학 삼성SDI 등이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다. 하지만 2차전지를 만드는 데 필요한 핵심소재의 실질 국산화율은 20% 미만으로 생산과 수출이 늘어날수록 대일 적자는 늘어나는 구조다. 특히 4대 핵심소재 중 음극소재의 국산화율은 단 1%에 불과하다.

한국전력을 주축으로 한 한국컨소시엄은 아랍에미리트(UAE)에서 사상 최초로 원자력발전소를 수주했지만 원전의 핵심 원천기술은 미국의 웨스팅하우스에서 사와야 한다. UAE에 원전 1기를 수출할 때 핵심설계코드,원자로 냉각재펌프,제어계측장치 등 핵심기술에 대해 웨스팅하우스에 제공해야 하는 돈은 원전 1기 건설가격의 10%를 넘어선다.

플랜트 해외수주 600억달러 돌파,원전 수출국 부상,2차전지 해외 수출 증대 등 한국 기업들의 약진이 계속되고 있지만 이면을 들여다보면 아직 가야 할 길이 멀다. 핵심 소재를 만들지 못하고 원천기술이 없기 때문이다. 핵심 소재와 원천기술을 개발하지 않고서는 수출이 늘어도 외국업체의 호주머니만 불려주는 상황을 모면하기 어렵다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2차전지 수출액의 40% 해외로

한국은 2차전지 시장의 제조 분야에선 강점이 있지만 핵심 기술의 외국 의존도가 높다는 구조적 문제가 있다. 지식경제부에 따르면 2009년엔 29억6000만달러 규모의 2차전지를 생산해 24억5000만달러를 수출했지만 핵심 소재를 수입하는 데 10억7000만달러를 썼다. 수출금액의 40% 이상이 외국으로 빠져 나가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소재 수입은 일본(55%) 중국(24%)에 집중돼 있다.

이는 2차전지에서 전기를 저장하는 양극소재와 음극소재,이온이 이동하는 통로인 전해액,양극과 음극의 접촉을 막는 분리막 등 4대 핵심소재의 국산화율이 지극히 저조해서다. 음극소재의 국산화율은 단 1%에 불과하다. 대부분 일본의 히타치화성이나 일본카본 JFE 등에서 수입하고 있다. 분리막의 국산화율도 25%에 그친다.
지경부 관계자는 "그동안 업계가 공격적인 설비투자와 정부의 연구 · 개발(R&D) 지원을 통해 세계 2위의 2차전지 생산 · 수출국이 됐지만 원천기술은 여전히 뒤처져 있다"며 "적극적인 R&D 투자를 통해 원천기술 확보가 시급하다"고 말했다.

지난해 사상 최대 실적을 냈던 정유업계도 100% 수입에 의존하는 부분이 있다. 같은 양의 원유에서 휘발유 등 고가의 석유제품을 더 많이 생산해 낼 수 있는 고도화설비의 공정개발은 미국 KBR 등 글로벌 엔지니어링업체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으며 설비를 운용하는 데 필요한 촉매도 전량 수입하고 있다.


◆웨스팅하우스 참여 없이는 수출 곤란

원전분야에선 한국이 가격 경쟁력도 보유하고 있지만 원천기술을 보유하고 있는 미국의 웨스팅하우스의 허락이 없으면 수출도 불가능한 상황이다.

UAE에 수출한 원전의 1기당 건설비용은 46억5000만달러인데 핵심설계코드,원자로 냉각재펌프,제어계측장치 등 3대 핵심원천기술의 가치는 약 5억달러에 해당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지난해 제어계측장치의 국산화에 성공하긴 했지만 UAE 수출 당시엔 웨스팅하우스의 기술을 적용한 것이기 때문에 외화 유출이 불가피하다.

원자력업계 관계자는 "해외 수출 시 발주국이 기술이전을 요구할 경우 원공급사의 동의가 반드시 필요하다"며 "실제로 한국은 2004년 중국,2007년 남아공 원전 입찰에 도전했을 때 원공급사가 기술이전을 거부하면서 입찰단계에서 배제되는 수모를 겪기도 했다"고 전했다.

지난해 국내 엔지니어링 업계는 해외에서 645억달러 규모의 프로젝트를 수주하며 사상 최대 실적을 달성했다. 하지만 그 이면을 들여다 보면 대부분 국내 기업은 부가가치가 낮은 시공 사업을 따낸 데 비해 부가가치가 높은 엔지니어링이나 기본설계 분야는 미국 네덜란드 영국 등 선진국의 기업들이 독식했다.

생산기술연구원에 따르면 국내 엔지니어링 업계의 원천기술 수준은 선진국의 60% 수준에 불과하다. 특히 석유 · 가스 플랜트 분야에선 50%,정유 · 석유화학에선 55%로 나타났다.

유준상 한국건설교통기술평가원 선임연구원은 "원천기술 개발에 나서야 할 대기업들이 실패에 대한 리스크를 두려워한다"며 "상당수 기업들이 R&D에 집중하기보다 해외에서 검증된 기술의 로열티를 사오는 데 치중하기 때문에 핵심기술 개발이 더디다"고 분석했다.

서기열 기자 phil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