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신사는 국내 기관투자가 중 대표적 '큰손'이다. 한때는 증시를 쥐락펴락했다. 지금은 아니다. 코스피지수가 사상 최고치 행진을 하고 있지만 투신은 '팔자'로 일관한다. 20일에도 그랬다. 이날까지 23거래일 연속해 4조원 가까운 주식을 팔아치웠다. 상승장에서 찬물을 끼얹는 '미운 오리새끼'로 취급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투신은 왜 주식을 팔아치우고 있는 것일까. 전문가들은 과열조짐을 보이고 있는 '자문형 랩(랩어카운트)'에 대한 증권사의 판촉과 관계 있다고 설명한다. 증권사들의 활발한 랩마케팅으로 인해 투신의 주식형 펀드 자금이 증권사의 자문형 랩으로 흘러가고 있다는 얘기다. "펀드 환매에 대응하려다보니 어쩔 수 없이 주식을 팔고 있다"는 게 투신사들의 하소연이다.

자문형 랩은 개인계좌로,증권사가 투자자문사의 자문을 받아 일임투자 형태로 운용하는 상품이다. 최소 가입금액은 5000만~1억원으로 10~20개 종목에 압축해 투자하는 게 특징이다. 수천~수만명의 돈을 한데 모아 70~80개 종목에 장기 · 분산투자하는 주식형 펀드와는 다르다. 매수 종목이 10개 안팎으로 제한돼 있다보니 자칫하면 증시를 급락시킬 수 있는 복병으로까지 꼽힌다.

증권사들의 자문형 랩 판촉활동은 달아 오를 대로 달아 올랐다. 랩강좌를 앞다퉈 개설하고 영업현장에서는 실적을 위해 주식형 펀드를 환매한 뒤 자문형 랩으로 갈아타라고 적극 권유한다는 소문까지 들린다. A증권사는 지난 15일 현재 자문형 랩 3조1100억원을 포함해 랩 전체 잔액이 4조4500억원으로 불어났다. 이 증권사는 연내 10조원 랩을 판매한다는 목표를 정했다. B증권사도 자문형 1조4000억원을 포함,지난 15일 현재 랩 잔액이 4조6846억원으로 늘었다. 증권사들이 이처럼 자문형 랩 판매에 열을 올리는 것은 주식형 펀드의 두 배(연 3%)에 달하는 수수료를 얻기 위해서다.

자문형 랩이 증시에 나쁘다는 건 아니다. 하지만 주가 추이가 방향을 바꾸면 언제든지 사고팔 수 있는 랩이 증시에 큰 충격을 던질 것은 분명하다. 주식형 펀드보다 랩에 치중하는 일부 증권사의 마케팅이 '아랫돌 빼서 윗돌막는'식의 곡예로 비쳐지는 이유다.

손성태 증권부 기자 mrhan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