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축은행의 잇단 영업정지와 부동산 PF 부실 문제를 다루기 위한 국회 청문회가 어제 시작돼 오늘까지 열린다. 이번 청문회가 저축은행 문제에 대한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하자는 취지로 열리는 것임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하지만 청문회 첫날인 어제 국회 정무위원회에서 보여준 여야 의원들의 행태는 한마디로 실망 그 자체다. 저축은행 사태에 대한 면밀한 원인 분석과 현안에 대한 논의는 뒷전이고 오로지 네탓을 주장하는 정치 공방에 주력하는 모습이었다.

민주당 의원들은 "현 정부가 부동산을 살리는 데 목숨을 걸고 저축은행과 건설사 간 위험한 공생관계를 조장하다 건설경기가 나빠지자 철퇴를 맞게 된 것"이라며 이번 사태의 책임은 현 정부에 있다는 점을 집중 부각시켰다. 반면 한나라당 의원들은 "저축은행 사태의 뿌리는 김대중 정부 시절의 예금자보호 한도 상향조정과 노무현 정부 때 소위 88클럽 도입으로 정부가 PF 대출을 조장한 데 있다"며 현 정부는 폭탄을 떠안은 책임밖에 없다고 항변하는 식이었다. 전 · 현직 장관들을 줄줄이 불러내 상대 정당을 공격하는 데 유리한 말을 한마디라도 끌어내려는 의원들의 노력은 실로 눈물겨울 정도다. 이게 무슨 의미가 있나.

물론 4 · 27 재 · 보선을 코앞에 둔 만큼 정치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불난 집 불을 끄기는커녕 그 앞에서 정치 공방만 할 것이면 하루 더 청문회를 열어본들 그 내용은 보나마나일 것이다. 더욱이 4 · 27 재 · 보선 지원 유세에 나선 의원들 때문에 좌석 상당수가 비는 등 청문회장은 처음부터 맥 빠진 분위기였다고 한다. 증인 중 한 사람은 청문회장에서 졸고 있다는 핀잔까지 받았지만 의원들이 그러니 증인들 역시 '시간만 때우면 그만'이라는 생각으로 응하게 된다. 정말 이런 청문회는 보기에도 역겹다. 오늘 청문회에서라도 저축은행 사태의 근본적인 해결 방법 및 재발 방지를 위한 건설적인 논의와 대안 제시가 있기를 기대해본다. 정부도 못 믿고 국회도 못 믿으면 국민은 누구를 믿어야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