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실리콘밸리는 1939년에 설립된 휴렛팩커드를 선두주자로 인텔,시스코,애플 등 세계 최고의 정보기술(IT)기업들이 명망을 이어가고 있다. 또 핫메일,스카이프,이베이,구글,페이스북과 같이 세상을 온라인 세계로 바꾸는 지배적 기업들도 대다수 실리콘밸리에 자리하고 있다. IT기기,소프트웨어,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이르기까지 세상을 바꾸는 혁신 기술과 제품들이 실리콘밸리에서 계속 탄생되고 성공하는 이유는 무얼까.

실리콘밸리는 어릴 때부터 기술을 재미있게 만지면서 배울 수 있는 환경이 조성돼 있다. 다양한 전자제품 회사들이 밀집돼 있어 주변에서 항시 접할 수 있고,학교에서도 실습용 기자재를 쉽게 구할 수 있다. 세계 최고 수준의 대학인 스탠퍼드대가 있으며,청소년은 부모와 함께 차고에서 맘껏 기술을 체험할 수 있다.

쿠퍼티노에 있는 홈스테드고등학교의 존 맥컬럼 기술교사와 같이 교실을 부품 상점처럼 차리고 열정적으로 제자를 길러내는 선생님도 만날 수 있다. 애플 창업자인 스티브 워즈니악과 스티브 잡스도 맥컬럼 선생의 '전자공학Ⅰ'과정을 이수했다. 휴렛팩커드와 애플 모두 차고에서 창업했으며 야후가 스탠퍼드대 내 컨테이너 박스에서 시작된 것도 실리콘밸리의 이 같은 토양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실리콘밸리는 사람과 생각의 만남이 끊임없이 이루어지는 공간이다. 1975년 당시 실리콘밸리의 전자엔지니어,프로그래머,해커,젊은 IT 벤처기업가 등이 만든 홈브루 컴퓨터 클럽은 신기술,신제품,아이디어가 토론되고 주변 정보가 생생하게 교류되면서 1986년까지 이어졌다. 당시 클럽 멤버들이 훗날 실리콘밸리 컴퓨터 산업 발전의 주축이 됐다.

실리콘밸리에는 현재도 크고 작은 모임이 지속적으로 열린다. 기술뿐만 아니라 금융,디자인,인문학,예술 등 다양한 분야의 교류가 이뤄지고 있다. 미국인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야심찬 우수 인재들이 함께하는 곳이기도 하다. 인텔,선,이베이,구글,야후 창업자들은 헝가리,인도,중국,러시아 등 외국 출신이다.

실리콘밸리야말로 세상을 앞서가는 아이디어와 도전이 왕성한 진정한 융합의 메카라 할 수 있다. 이 외에도 실리콘밸리는 세계적 기업가,금융가,학자,연구자 등 소득과 지식수준이 높은 사람들이 인생을 즐길 수 있는 환경을 갖추고 있다.

우리나라도 많은 지역에서 ○○도시,○○벨트,○○공단과 같은 명칭 아래 실리콘밸리를 벤치마킹하고 있다. 그러나 인간,삶,만남,생각이라는 요소를 소홀히 여기고 건물,기술,사업,부동산 개발 중심으로만 접근하면 정작 유치해야 할 인재와 기업은 오지 않고 중국 관광객들의 숙소로 전락할 수 있다. 모래에서 실리콘을 만들지 못하고 모래성으로 끝날 수 있는 것이다.

김용근 < 한국산업기술진흥원장 yonggeun21c@kiat.or.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