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중소기업 사랑,청소년 글짓기 공모전'에 응모한 중3 여학생의 '우리 아빠는 간장공장 공장장'이라는 글이다. 물론 중학생이 돼서는 아빠를 충분히 이해하게 됐다고 덧붙였지만….
이 학생보다 더 수모를 당하는 것은 도금업체와 주물업체 근로자의 자녀들이다. 간장업체는 도금이나 주물업체에 비하면 양반이다. 남동공단의 한 도금단지에 가면 할아버지 할머니들만이 현장을 지킨다. 80세 가까운 근로자들도 있다. 경영자도 마찬가지다. 환갑 나이의 사장은 경영자 중 막내축에 든다.
젊은이들은 구경하기 힘들다. 채산성이 안 좋으니 제대로 대우해 주지 못하고,작업환경 개선에 엄두를 내지 못하니 젊은이들이 올 리 없다. 외국인 근로자들조차 기피할 정도다.
주물업체와 열처리업체도 마찬가지다. 이들을 포함해 용접 금형 등을 '뿌리산업'이라고 부른다. 이들이 없으면 자동차 전자 정보통신 금속 조선 철강산업이 존재할 수 없다. 그렇게 중요하건만 상당수 기업인들은 몇 년 내 산업의 뿌리가 말라버리는 것 아닌가 걱정하고 있다.
반월공단의 한 도금업체는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첨단 설비를 개발,냄새와 폐수없는 깨끗한 공장을 가동하고 있다. 직원이 대학 진학을 원할 경우 학비를 전액 대 준다. 20년 근속하면 쏘나타급 자동차도 사 준다. 이 회사는 부족한 인원을 채우기 위해 연줄 채용 등 갖은 방법을 총동원해 작년에 36명을 뽑았지만 퇴직자가 37명에 달했다. 이 회사마저 이럴진대 다른 회사는 말할 것도 없다.
정부는 뿌리산업 육성에 힘을 쏟고 있다. 지난해 '뿌리산업육성책'을 발표했고 관련 지원법도 마련 중이다. 구조 고도화,인력 공급 확대,경영 및 기술역량 강화가 핵심이다. 지난 15일에는 부산에 도금업체 25개사가 입주하는 친환경 집적시설인 청정도금센터도 마련했다. 그런데도 기업인들은 채용은 여전히 어렵고 경영여건도 최악이라고 아우성이다.
어떤 대책이 더 필요할까. 우선 종업원들이 자부심을 느낄 수 있도록 해 줘야 한다. 임대주택 우선공급이나 학자금 지원,병역특례 등 파격적인 대책이 필요하다. 기업인을 위해선 상속세 면세 혜택도 확대돼야 한다. 한마디로 더욱 과감한 지원과 예산 배정이 필요하다.
뿌리가 시들면 열매를 기대할 수 없다. 현장을 다녀보면 우리 뿌리산업이 막바지에 와 있다는 게 피부로 느껴진다. 이 문제를 해결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자녀들이 "아빠는 자랑스런 도금 마이스터"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날은 과연 언제 올 것인가.
김낙훈 중기전문기자 nh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