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 삼성 회장이 21일 서울 서초동 삼성전자 본관으로 첫 출근했다. 삼성전자가 서초 사옥에 입주한 2008년 이후 이 회장이 이곳에 들른 건 딱 한 번뿐이다. 작년 12월1일 삼성전자 본관에서 열린 '자랑스러운 삼성인상' 시상식 때다. 당시는 삼성인상 수상자들에게 시상을 하기 위해 들른 것이어서 업무를 보기 위해 출근한 것은 사실상 처음이다.

◆42층 집무실에서 업무보고 받아

이 회장이 서초 사옥에 도착한 것은 이날 오전 10시께.그룹 관계자들은 오전 9시가 돼서야 이 회장이 출근한다는 통보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비서팀장인 김원택 상무와 함께 검정색 마이바흐에서 내린 그는 곧바로 엘리베이터를 타고 42층으로 향했다. 42층은 이 회장 집무실과 김순택 실장 등 미래전략실 비서팀 임직원들의 사무실이 있는 곳이다. 집무실로 올라간 이 회장은 김순택 미래전략실장(부회장)으로부터 각 계열사를 포함한 그룹 전반에 대해 업무보고를 받았다. 또 LCD TV 판매현황 등 주요경영현황을 청취했다.

이 자리에는 김 실장을 비롯해 이재용 삼성전자 사장,정유성 인사지원팀 부사장,김상균 법무지원실 사장,이상훈 전략1팀 사장,장충기 커뮤니케이션팀 사장,이인용 커뮤니케이션팀 부사장,김명수 전략2팀 전무,전용배 경영지원팀 전무 등이 배석했다. 최지성 삼성전자 부회장은 수원사업장에서 회의 일정이 잡혀 있어 참석하지 않았다. 업무보고를 마친 뒤 낮 12시,이 회장은 김 실장 등과 함께 42층 집무실에서 간단한 중국식 코스요리로 점심식사를 했다.

◆삼성어린이집도 방문

이 회장은 이어 오후 2시25분께 김순택 실장, 이재용 사장 등과 1층에 있는 삼성어린이집에 들러 보육시설 현황을 살폈다. 그룹 관계자는 "이 회장이 1987년 취임 직후부터 선진국으로 가기 위해서는 여성인력의 사회활동이 중요하고,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보육시설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며 "어린이집을 둘러본 것도 이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어린이집을 나온 이 회장은 지하 1층에 있는 삼성전자 제품전시장 '딜라이트숍'을 찾았다. 10분 넘게 전시된 제품을 둘러본 그는 "하루에 2000명이 이곳을 찾는다"는 안내직원의 설명에 "음…,많이 오네"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 뒤 이 회장은 1층 로비에서 '첫 출근 소감이 어떠냐'는 기자들의 질문을 받고 "빌딩이 참 좋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어떤 보고를 받았느냐는 질문에는 "그룹 전반적인 이야기….처음 듣는 얘기도 많았다"고 말했다. 그는 '인상 깊은 이야기가 있었느냐'고 묻자 "회장이 인상 깊은 이야기를 들으면 안되겠죠.비슷한 얘기를 반복해서 들어야 하는 게 윗사람이 할 일이죠"라며 "가끔 나오겠다"고 답했다.

◆"삼성 곳곳에서 견제 받고 있다"

이 회장은 삼성전자를 상대로 특허침해 소송을 제기한 애플에 대한 생각도 밝혔다. 그는 "애플뿐 아니라 전 세계에서 우리와 관계없는 전자회사가 아닌 회사까지도 삼성에 대한 견제가 커지고 있다"며 "못이 튀어 나오면 때리려는 원리"라고 말했다. 그는 이에 앞서 딜라이트숍에서 기자들과 만나 "기술은 주기도 하고 받기도 하는 것"이라고 답하기도 했다. 삼성이 성장하면서 경쟁사들의 견제가 심해지는 데 대해 위기감을 가져야 한다는 얘기다.

이 회장이 마이바흐를 타고 삼성전자 서초 사옥을 떠난 것은 오후 3시.삼성은 이 회장의 첫 출근에 대해 "이미 예정돼 있었던 일정이며 삼성전자 회장으로서 집무실에 출근하는 건 당연한 일"이라는 반응이다. 작년 12월 삼성인상 시상식 때 '(서초사옥에) 자주 나올 거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종종 나오겠다"고 답했던 것처럼 전혀 이상할 게 없다는 얘기다.

이 회장이 반나절 동안 업무보고를 받는 사이 삼성은 '초긴장 모드'를 유지했다. 이 회장이 과거부터 집무실로 출근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뭔가 다른 의도가 있지 않겠나'라는 해석도 삼성 내부에서 나왔다.

이 회장은 2008년 삼성전자 태평로 사옥 시절에도 집무실에 딱 두세 번 출근했다. 출근을 않는 대신 그는 한남동 자택이나 그룹 영빈관인 승지원에서 보고를 받고 사장단 회의를 주재해왔다. 지금도 수시로 김순택 실장을 자택으로 불러 업무 보고를 받는다.

그룹의 한 관계자는 "이 회장은 1990년대 중반 사장들에게 '내가 출근을 하면 사장들이 일은 제쳐 놓고 나에게 잘 보이려고 회장실에만 촉각을 곤두세우는 것 아니냐'며 출근을 하지 않는 이유를 설명한 적이 있었다"며 "(오늘 출근한 것은) 최근 삼성을 둘러싼 전반적인 상황과 관련해 긴장감을 주기 위한 것 아니겠나"라고 설명했다.

이태명 기자 chihir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