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디로 아이러니다. 누구나 성공하고 잘 살기를 원하면서도 정작 기업가와 부자를 다룬 드라마는 음모와 술수만 강조하니까. 0.01%의 귀족과 일반인을 연결시키려다 보니 무리할 수밖에…."(주부 이주영 씨) "시청률 올리려고 말초적인 내용과 비정상적인 관계만 부각시켰다. 피를 말리는 글로벌 경쟁체제에서 기업가들이 어떻게 시장을 개척하고 비즈니스를 펼치는지를 제대로 그리려면 작가와 연출가들이 공부를 더 많이 해야 할 것 같다. "(직장인 이성우 씨)

MBC 수목드라마 '로열패밀리'와 SBS 월화극 '마이더스' 등 기업 드라마에 대한 시청자들의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사업가와 부자 가문을 다루는 시각이 지나치게 편향적이어서 오히려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는 지적이다.

지난해 '노블레스 오블리주'(상류층의 사회적 책무)를 담은 드라마 '거상 김만덕' 등의 시청률이 저조하자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방식으로 돌아선 것.'마이더스'와 '로열패밀리'라는 제목에서부터 돈과 신분을 강조하려는 기획 의도를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21일 방송된 '로열패밀리'에서는 회사 소유권을 둘러싼 며느리와 시어머니 간의 싸움이 정점으로 치달았다. '양공주' 출신의 며느리는 백인과의 사이에 낳은 아들을 자신이 죽였다고 시어머니인 JK그룹 공 회장에게 자백했다. 그러자 공 회장은 비밀을 덮어두는 대신 며느리를 살해할 결심을 내비쳤다. 그는 온갖 불법과 악행을 저지르는 '악의 축'으로 그려진다.

일본 소설 '인간의 증명'을 권음미 작가가 각색하고 드라마 '선덕여왕'의 김영현 · 박상연 작가가 기획한 이 드라마에 기업가 정신이나 건강한 욕구에 대한 성찰은 거의 없다. 사업가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악인일 뿐이다.

'주몽'의 최완규 작가가 집필한 '마이더스'에서도 기업가 집안은 상습적인 불륜과 탐욕으로 가득한 집단으로 묘사된다. 천재 변호사가 비밀스런 가문의 일을 봐주며 타락해 가는 과정을 통해 돈과 인간의 함수관계를 포착하겠다는 게 집필 의도였지만 자극적인 단면만을 과장해 이야기를 풀어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가령 기업가 집안의 유력한 후계자였던 차남은 여러 이복남매가 모인 자리에서 이렇게 말한다. "근본도 모르는 애들과 형제란 소리를 들으며 사는 게 지긋지긋하다. 내가 후계자로 지명되면 너희들과의 관계는 끝이다. "

이 집안 남매들은 후계자로 낙점받기 위해 서로 싸운다. 이 경쟁에서 헤지펀드를 운용하는 딸이 승리하지만 그는 '괴물'이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고용 변호사를 감옥에 보낸다. 은행을 인수하기 위해 반대파를 살해하도록 청부한 혐의도 짙다. 차남은 폭력배를 고용해 경쟁자들을 납치한다. 이들이 돈 버는 방법도 대부분 탈법적이다. 정치 자금을 관리하다 큰 부자가 됐거나 주가조작으로 떼돈을 버는 식이다. 사업가들의 진지한 노력은 찾아보기 어렵다.

한 방송사 관계자는 "충분한 검증을 거치지 않은 드라마라 쉽게 만들 수는 있겠지만 '막장'이란 비난을 피할 수는 없게 됐다"고 말했다.

본격적인 기업 드라마를 만들지 못하는 이유는 국내 작가 양성시스템의 구조적인 문제에서 비롯된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대부분 문과 출신인 작가들이 기업과 경영에 관한 전문지식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이다. 고영탁 KBS 드라마 국장은 "전문직 드라마를 제대로 그리려면 관련 분야 경험과 지식을 지닌 작가들이 집단 창작하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며 "종영된 드라마 '프레지던트'는 의원보좌관 출신을 작가팀에 끌어들여 사실적인 이야기를 창조해 낸 좋은 사례였다"고 말했다.

유재혁 기자 yoo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