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자동차에 램프와 섀시를 납품하는 SL(옛 삼립산업)은 10년 전 매출이 1900억원이었다. 작년에는 해외 법인과 계열사를 포함해 2조4000억원으로 불어났다. 순이익은 86억원에서 1063억원(연결기준),주가는 1700원대에서 2만8000원으로 1500% 뛰었다.

평화정공도 대표적인 '10 · 10(10년간 10배 성장)'기업이다. 2001년 매출 860억원에서 지난해 8300억원(해외 공장 포함)으로 늘었고,순이익도 10배 증가했다. 주력 제품인 도어모듈 외에도 도어힌지(차체와 문을 연결하는 장치)와 래치(잠금장치) 등 다른 부품까지도 해외 주문이 늘며 올해 매출이 1조원을 넘어설 것으로 회사 측은 기대하고 있다. 지난 10년 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품질 기준 '쓴약'이 경쟁력 키워

SL의 성공 스토리는 현대차를 빼놓고 쓸 수 없다. 이 회사는 2000년 9월 현대차로부터 '식스 시그마(6-sigma)' 우수업체상을 받았다. 불량률을 제로화하고 모기업의 품질기준을 맞추기 위해 뼈를 깎는 노력을 기울인 결과였다. 품질 우수업체로 선정된 뒤 현대차 납품 물량이 늘어나며 성장궤도에 진입했다.

이성엽 SL사장은 "품질 경쟁력을 갖추면 모기업이 일정한 마진과 물량을 보장해줘 해외진출도 어려움이 없었다"고 했다.

이항구 산업연구원 기계산업팀장은 "현대차가 과거 협력업체들에 단가인하(CR · cost reduction)를 요구했지만 어느 정도는 마진을 보장해 줬기 때문에 부품업체들이 흑자를 내면서 성장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엄격한 품질관리→일정 마진 보장→매출 증대→이익 증가→연구개발(R&D) 투자확대→기술 품질 향상→수주 확대'라는 선순환 흐름이 작동했다는 얘기다.

◆해외 주문 밀려들자 증설 바람

지난 22일 대구 성서공단 내 평화정공.1만6500㎡(5000평) 부지에 들어선 공장에선 150여명의 생산직 직원들이 쉴새 없이 돌아가는 기계 사이에서 도어래치를 조립하고 있었다. 진병주 팀장은 "자동화 설비가 갖춰져 5초에 한 개씩 제품을 생산한다"며 "주문이 늘어 야근,특근까지 해도 물량이 달린다"고 말했다. 조립한 제품은 컨베이어벨트를 타고 물류창고로 옮겨진 뒤 곧바로 차량에 실린다. 일부는 현대 · 기아차 국내 공장으로,나머지는 인천항으로 이동한다. 이명현 대표는 "후드 래치는 GM이 한 해 동안 생산하는 자동차 800만대 중 90%에 장착되고 도어힌지는 GM 전 차종의 30%에 적용된다"고 했다. 푸조에 연간 180만개의 도어체커(문이 일정한 범위 안에서 열리도록 하는 부품) 납품계약도 체결했다. 10년 전에는 현대차의 '하청업체'였지만 지금은 전 세계를 누비는 글로벌 부품업체로 성장했다.

글로벌 업체들의 러브콜이 이어지며 자동차 부품업계엔 공장 증설 바람이 불고 있다. 평화정공의 이 대표는 "BMW,폭스바겐 등과 부품공급 계약을 체결했다"며 "늘어나는 주문량을 맞추기 위해 해외 공장도 확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미 중국 옌청에 제 3공장을 짓고 있다. 6월에는 미국 디트로이트에 영업사무소와 기술지원센터를 열기로 했다.

인도와 중국,미국 등에 공장을 운영하는 화신은 브라질에 2013년 가동을 목표로 공장을 짓고 있다. 인팩은 충주 공장 건설에 착수,연내 준공할 예정이다.

◆주목받는 한국발 서플라이 체인

성우하이텍 한일이화 세종공업 등 부품업체들도 동반 성장한 사례다. 현대차는 해외에 공장을 지을 때 기술력이 뛰어난 국내 부품업체들과 함께 진출하는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전 세계에서 가격 대비 품질이 좋은 부품만을 선별해 구매하는 GM식 '글로벌 아웃소싱' 전략과는 차별화되는 점이다.

일본산 부품공급 차질로 글로벌 자동차 업체들이 감산에 돌입하는 등 생산차질을 빚고 있는 상황에서 부품업체와의 동반성장에 기초한 현대차식 서플라이 체인이 주목받는 이유다.

대구=최진석/장진모 기자 iskr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