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소위 '11 · 11 옵션쇼크' 사건을 조사했던 금융감독원 담당 국장이 이 사건 피의자인 도이치증권 쪽 변호를 맡은 김앤장 법률사무소로 옮길 것이라고 한다. 금감원에 따르면 옵션쇼크 조사 실무책임자였던 금감원 L모 국장은 최근 사표를 제출, 7월부터 김앤장으로 출근할 예정이라는 것이다. 당사자인 L씨는 "김앤장에 몸담더라도 옵션쇼크 관련 업무 요구에는 응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지만 김앤장이 그를 스카우트하려 한 이유는 삼척동자도 다 짐작할 수 있는 일이다.

우리 사회에서 고위 공직자가 고액 연봉을 제시하는 로펌으로 자리를 옮기는 일은 종종 있어왔다. 하지만 불과 몇달 전 사건 조사를 총괄했던 금감원 담당 국장이 바로 그 사건의 피의자를 변호하는 로펌으로 이직한다는 점에서 이번 일은 매우 충격적이다. 아무리 공직자 윤리와 업계의 모럴해저드가 땅에 떨어졌다고 해도 정말 너무한다는 생각을 갖게 된다. 우리가 이 일에 당혹감을 갖게 되는 것은 너무도 분명한 이익상충이 한국 최대 로펌에 의해 버젓이 시도되고 있다는 것 때문이다.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이 가능한 것에는 허술하기 짝이 없는 공직자윤리법의 재취업 금지 규정도 한몫하고 있다. 공직자 윤리법(17조)은 일정 범위 공무원들이 퇴직일로부터 2년간 퇴직 전 3년 이내 업무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기업에 취업할 수 없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동법 시행령(33조)은 재취업 금지 대상 기업을 '자본금 50억원 이상, 매출액 150억원 이상'으로 제한하고 있다. 김앤장 같은 굴지 로펌들은 매출액은 크지만 자본금이 적어 여기에 해당되지 않는다. 따가운 시선에도 불구하고 법조나 금융감독 당국, 공정거래위원회, 국세청 출신 고위 공직자들이 버젓이 로펌행을 택하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에서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문제는 김앤장이다. 김앤장은 법무법인이 아니라 합동사무소라는 형태 상의 면탈 조항을 내세워 누가 봐도 명백한 이익상충을 교묘하게 피해왔다는 세간의 의혹을 받고 있다. 정의(正義) 문제조차 돈으로 해결하는 것이 현대 사법 체계에서는 불가피하다고 하더라도 김앤장의 퇴직 인사 채용은 이미 도를 넘어섰다는 것이다. 김앤장에 근무하는 '전직'들 스스로가 김앤장 고문단 정도면 국무회의를 몇번이고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자인하는 정도다.

이런 상황이라면 전관예우와 낙하산에 대한 사회의 비판과 우려도 모두 헛구호에 불과하다. 그렇지 않아도 최근 법률가들의 직역 이기주의에 대한 비판이 높아가는 시점이다. 김앤장은 아예 체면과 위신조차 벗어버릴 작정인가. 김앤장 측은 뒤늦게 "금감원 L국장이 김앤장에 오지 않기로 했다"고 해명했지만 이게 무슨 소동이란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