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데스크] KAIST 사태의 오해와 진실
대덕연구단지에 있는 KAIST를 처음 찾은 것은 우리나라가 외환위기의 고통을 받던 1999년 봄이었다. 대학 내 벤처기업을 취재하기 위해서였다. 캠퍼스에서 삼삼오오 모여 노닥거리는 학생들을 거의 찾아볼 수 없다는 사실에 놀랐던 기억이 남아있다.

KAIST 관계자로부터 학생들이 도서관이나 강의실,기숙사 등 어디에서든 '열공' 중이란 설명이 뒤따랐다. KAIST와 흔히 비교되는 캘리포니아공대(CALTECH) 학생들을 미국 사람들은 '너드(Nerd · 공부 외에는 별 재간이 없는 얼간이)'라고 부른다. 한국판 너드의 '형설지공'이 든든했었다.

2011년 봄,KAIST가 크게 흔들리고 있다. 도서관과 강의실에서 자신과의 싸움을 벌여야 할 학생들이 '이건 아닌데…' 하면서 고개를 젓고 있다. 학생과 교수의 잇단 자살사건이 계기다. 학교 밖에선 징벌적 등록금제와 전 과목 영어수업 등이 문제를 잉태했고,서남표 총장의 상명하복식 리더십이 사태를 키웠다는 비판이 잇따른다.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대학이니만큼 정당한 비판은 수용해야 한다. 잘못된 건 머리를 맞대 바로잡으면 되고.

'KAIST=서남표'라는 프레임에서 사태가 전개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KAIST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기회있을 때마다 칭찬하는 한국 교육의 상징으로 통해왔다. 이 학교는 1971년 홍릉에서 설립돼 1973년 대학원 입학생을,1975년 박사과정 입학생을,1986년 학부생을 처음 받았다. 세계대학 랭킹에서 후발주자 KAIST(79위)는 서울대(109위)를 앞섰다(영국 더타임스 2010년).KAIST는 28위에 오른 포스텍과 함께 'SKY(서울대 고려대 연세대)'로 대변되는 국내 대학 서열을 깼다. 선입견과 고정관념이 지배하는 진학 풍토에서 두 학교가 일궈낸 성과는 다른 사학들의 성취욕을 자극했다. 삼성을 재단으로 영입한 성균관대와 경북 포항에 있는 한동대의 약진이 이런 성과일 수 있다.

KAIST와 포스텍의 작은 성취는 교육 현장 전반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과학고와 영재고에 우수 인력이 모이게 만든 게 첫번째 변화다.

우수 인재들은 과학고와 영재고에 진학하면 훗날 서울대는 물론 과학기술분야에 특화된 KAIST와 포스텍 등에 둥지를 틀고 과학자의 꿈을 키울 수 있다는 그림을 그려가고 있다. 지방자치단체들의 요구로 울산과학기술대(UNIST),광주과학기술원(GIST),대구경북과학기술원(DGIST)이 잇따라 문을 연 것도 'KAIST 효과' 덕분이다. 이들 학교에 우수 인재가 몰리는 건 무엇보다 선진국 대학 못지않은 넉넉한 장학금과 기숙사 시스템 덕분이다.

이제부터가 문제다. 역설적이지만,자살사태는 앞만 보고 달려온 KAIST에 스스로를 돌아볼 시간을 줬다. 인도 학생들 사이에 미국 MIT에 들어가기보다 힘들다는 'IIT(인도공과대학) 시스템'을 벤치마킹할 필요가 있다.

IIT는 뭄바이 델리 첸나이 등 전국 15곳에 독자적인 캠퍼스를 두고 있다. 막대한 동문네트워크를 자랑하는데 각 캠퍼스가 IIT라는 하나의 브랜드를 사용하는 데서 힘을 발휘한다는 분석이다.

미국 실리콘밸리와 항공우주국(NASA) 연구원 인력의 20~30%를 IIT 출신들이 차지하는 것도 한 해에 8000여명의 졸업생을 배출하는 것과 무관치 않다. 같은 국립대 성격의 UNIST,GIST,DGIST 등을 KAIST 깃발아래 뭉치면 더 강한 대학과 그에 걸맞은 글로벌 네트워크가 생길 수 있다.

남궁 덕 중기과학부장 nkdu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