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재무설계 (2)] "아직 젊은데 뭘…" 여유 부리다 은퇴설계 헝클어져 낭패볼 수도
한국 사람 10명 중 6~7명은 노후자금 마련이 잘돼 있지 않다고 한다. 취약한 노후 준비에 대한 보도가 매일 나오다시피 하는데 왜 노후 준비는 나아지지 않는 것일까.

우선 지난 30년 동안 매년 5년 5개월씩 기대수명이 증가하면서 삶의 모습이 크게 바뀌고 있는 점을 들 수 있다. 1980년 남성들의 기대여명은 평균 62세에 불과했다. 50대 중반에 정년퇴직을 하고 나면 불과 10여년 생존할 따름이니 빨리 쉬어야 했다. 자녀들도 2~3명 이상에 달하는 고출산 시대라서 부모를 부양하는 데 큰 부담이 없었다.

하지만 이제는 기대수명이 90세에 달하는 시대가 됐다. 50대 중반 이후 무려 30년 이상의 노후 생활을 해야 하는 시대가 갑자기 다가온 것이다.

◆한국인 노후 준비,여전히 취약
[은퇴·재무설계 (2)] "아직 젊은데 뭘…" 여유 부리다 은퇴설계 헝클어져 낭패볼 수도


자녀교육과 결혼비용을 꼭 대줘야 한다는 전통적인 인식구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도 노후 준비 소홀의 한 이유로 꼽힌다. 한국의 국민소득은 세계적으로 상위권에 속한다. 그러나 전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의 사교육비를 부담하는데다 자녀의 결혼자금도 도와주느라 노후 준비가 허술하다. 문제는 베이비부머들의 경우 더 이상 자녀들에게 노후 부양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지난해 여성가족부가 실시한 가족실태 조사에 의하면 '노후에 누구와 지내고 싶은가'라는 물음에 '배우자와 단 둘이'란 답변이 72.7%였다. 자식과의 결속감은 약화되고 믿을 건 배우자뿐이라는 생각이 강해지고 있다. 젊은이들 역시 부모 부양에 대한 생각을 바꾸고 있다.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젊은이들의 노인 부양 의식은 급격히 약화돼 노인 부양이 '사회적 책임'이라는 인식이 확대되는 추세다. 취약한 노후 준비 이면에는 이런 가족관계의 근본적인 변화가 자리잡고 있다.

노후 준비가 개선되지 않는 세 번째 이유는 단기투자 관행 탓이다. 노후자금을 마련하기 위해선 퇴직연금 개인연금에 최소한 20년 이상 가입하고 은퇴 전까지 꾸준하게 적립식으로 연금과 보험에 투자해야 한다. 2007년까지 적립식펀드 투자가 활성화되면서 소액으로 인생에 필요한 자금을 장기간 투자해서 마련하고자 하는 긍정적인 흐름이 있었다. 하지만 2008년 발생한 세계 금융위기로 주가가 급락하자 적립식펀드 투자 계좌 수가 1568만개를 정점으로 이제는 938만개로 줄어들었다.

◆체계적인 은퇴설계가 중요하다


이제부터라도 은퇴설계를 제대로 해야 한다. 재무적인 준비뿐만 아니라 비재무적인 측면도 잘 대비해야 한다. 재무적인 측면은 주로 노후생활비와 의료비 등을 말하며 비재무적인 측면은 자녀와의 관계,은퇴 후 취미생활과 사회활동 등을 말한다.

무엇보다 은퇴에 대한 인식을 바꿔야 한다. 사전을 찾아보면 은퇴란 직업에서 물러나거나 사회활동에서 손을 떼고 한가히 지낸다는 말이다. 하지만 이제는 정년 퇴직 후에도 30년 이상 더 살아야 하는 만큼 한가히 지내기에는 너무나 긴 세월이 남는다. 그래서 선진국에서는 은퇴를 더 이상 휴식의 시간이 아니라 자아성취를 하는 '제3의 인생(third age)'으로 생각한다. 자아성취와 꼭 하고 싶은 일을 위해 30년의 시간과 정열을 투자한다는 개념이다.

둘째 '3층 보장구조'를 이해하고 잘 활용해야 한다. 3층 보장구조란 세 가지의 연금,다시 말해 국민연금 퇴직연금 개인연금을 통해 노후생활비를 마련하는 것이다. 국민연금의 경우 불신을 하기보다는 국민연금공단에 전화하거나 인터넷으로 자신의 연금액을 점검해 노후자금의 중요한 원천으로 사용해야 한다. 퇴직연금은 퇴직 후 일시금으로 타기보다는 연금으로 수령하는 게 바람직하다. 개인연금은 올해부터 소득공제 혜택이 연간 400만원으로 확대됐다. 55세까지 투자해 중요한 노후자금으로 사용해야 한다.

◆적립식 투자,금융자산 비중 확대하라


셋째 적립식 투자를 생활화해야 한다. 우리 국민들은 상당수가 은퇴 후 월 200만원 정도의 노후생활비를 원하고 있다. 하지만 3층 보장구조를 통틀어 마련할 수 있는 연금이 200만원에 미달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따라서 각종 비과세 연금상품에 가입해 노후를 철저하게 대비해야 한다. 요즘 활성화되고 있는 노후상품으로는 변액연금 변액유니버설연금 월분배형 펀드 등을 꼽을 수 있다.

넷째 지나친 부동산 투자는 피해야 한다. 우리 국민들의 총자산 중에서 부동산이 차지하는 비중은 80% 수준으로 매우 높다. 노후에 부동산에서는 규칙적인 생활비가 나오지 않는다. 가능하면 금융자산과 연금 위주로 평생소득 흐름을 마련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다섯째 젊은이들의 노후 준비도 바뀌어야 한다. 각종 조사 결과를 보면 젊은이들 역시 중장년층 못지 않게 노후 준비가 허술한 것으로 나타난다. 저축률이 매우 낮으며 장기적인 재무설계와 투자를 실천하는 자세도 부족하다. 오래 전 고령화사회를 맞았던 서양에서는 은퇴자금 마련을 위해 소액을 장기간 투자하는 문화가 정착돼 있다. 20대 초반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퇴직연금과 개인연금에 가입하고 적립식펀드 투자를 시작한다.

이제부터라도 소액 · 장기투자를 통해 인생설계를 해야 한다. 외국에서는 이런 투자법을 '카페라테 효과'라는 말로 표현하기도 한다. 한 잔에 4000원이 훌쩍 넘는 카페라테를 하루에 한 잔씩 아끼면 한 달에 12만원이 된다. 이 돈을 매월 적립식펀드 투자로 개인연금에 가입하면 30년 후에 얼마가 될까? 기대수익률을 대충 6%로 잡아서 계산해보면 1억3000만원이라는 결과가 나온다. 하지만 이런 계산방식에는 오류가 있다. 매일 카페라테 한 잔을 아낀다고 했으니 인플레이션으로 커피값이 오르면 투자액도 늘어나게 된다. 그래서 매년 물가상승률을 3%라고 가정하고 다시 계산해보면 1억9000만원이나 된다.

◆중장년층은 당장 노후 준비에 나서야


[은퇴·재무설계 (2)] "아직 젊은데 뭘…" 여유 부리다 은퇴설계 헝클어져 낭패볼 수도
마지막으로 이미 투자할 시간을 놓쳐버린 중장년층들도 용기를 가지고 노후 준비를 시작해야 한다.

40~50대의 경우 이 시기가 매월 일정 정도의 은퇴자금을 저축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하고 당장 실행에 옮겨야 한다. 노후가 불안하다면 자녀의 결혼자금,유학자금 등은 뒤로 미루고 자신의 은퇴부터 준비하는 것이 좋다.

60세 이상의 경우에는 연금이 자식보다 낫다는 생각으로 연금화에 집중해야 한다. 아무리 많은 자산이 있더라도 자녀관계나 사업상의 이유로 노후생활이 어려워질 수 있다. 따라서 자산의 많고 적음을 떠나 노후에는 보유자산 외에 매월 일정한 소득이 발생하도록 해야 한다.

우재룡 삼성생명 은퇴연구소장 fundre@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