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주가가 급상승하면서 투자자 사이에는 '고'냐,'스톱'이냐에 대한 전망이 극명하게 엇갈린다. 기업 이익이 늘어나면서 주가수익비율(PER)이 낮아지는 등 개선이 있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당장은 밸류에이션보다 절대주가가 시장에 더 큰 역할을 하므로 실적이 시장을 다시 움직이는 데까지 시간이 걸릴 것이다. 주가가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지만 경계해야 할 부분도 있다.

우선 국내외 모두 경기가 둔화되고 있고 향후에도 빠르게 개선될 것 같지 않다. 미국과 유럽연합(EU)의 실업률은 10%에 육박한다. 더 심각한 문제는 지난 1년간 성장률이 3% 이상 높아지는 동안 실업률은 0.3% 개선되는 데 그쳤다는 점이다. 고용이 개선되려면 지금보다 경제가 더 좋아져 기업심리가 극적으로 개선돼야 하는데 쉽지 않다. 그전까지는 고용 부진에 따른 소비 위축이 계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세계 금융위기를 촉발시켰던 미국의 부동산 시장은 상황이 심각하다. 지난해 3분기 들면서 전반적인 거래 위축과 가격 둔화가 나타나고 있는데 집을 팔아도 차입금을 다 갚을 수 없는 물건이 전체 모기지 주택의 20%를 차지하고 있다. 경기의 방향성이나 구조를 볼 때 당분간 실물경제가 주식시장에 도움을 주기는 힘들 것이다.

국내 경기가 좋지 않지만 금융정책 부분은 양호하다. 물가 상승을 감안할 때 당분간 한국은행은 금리를 계속 올릴 수밖에 없지만 현 금리 수준이 정상에 비해 낮아 금리 인상이 문제되지 않는다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PER 적정 수준 도달했다고 봐야

작년 코스피200 기업의 영업이익 총액은 80조원이었다. 금융위기 직전 최고치였던 2007년 이익이 60조원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30% 정도 늘어난 셈이다. 코스피지수가 2000을 넘었을 때 추가 상승에 대한 기대가 컸던 것은 이 같은 이익의 힘을 믿었기 때문이다.

해외 시장도 이익이 좋기는 마찬가지다. 지난해 3분기 미국 기업 이익은 8000억달러로 2007년 기록했던 분기당 최고 수익에는 못 미쳤지만 금융위기 직후 극심한 침체에서는 벗어났다.

양호한 실적 전망에 근거해 국내 주식시장에서는 주가가 실적 대비 저평가돼 있다는 믿음이 확고하게 자리잡고 있다. 이익 대비 주가를 나타내는 PER이 10배 정도에 지나지 않아 추가 상승의 여지가 크다는 인식이다.

사실 지난 10년을 놓고 보면 PER 10배가 싼 수준인지 확신하기는 어렵다. 2000년부터 올해 2월까지 총 134개월 동안 우리나라 PER이 10배 이하였던 기간은 93개월로 전체의 70% 정도다. 시장에서 얘기되고 있는 기준에 따르면 지난 10년간 대다수 기간에 주가가 저평가 상태에 있었던 셈이 된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국내 상장 기업에 대한 평가는 몇 번의 변화 과정을 거쳤었다. 크게 나누면 2001~2003년까지 저평가 기간과 2005년의 현실화 기간,그리고 이후 안정 기간으로 볼 수 있다.

2001~2003년까지는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 한국지수의 PER이 평균 8배 수준에 그칠 정도로 저평가된 상태였다. 외환위기 발생 후 2~3년이 지나면서 이익 규모가 늘고 형태도 안정됐지만 투자자들은 우리 기업 이익 구조가 외환위기 이전에 비해 바뀌었다는 확신을 갖지 못했었다. 경제적으로 당시가 위기증후군이 계속되던 시기여서 제대로 된 평가를 받는 데 장애 요인이 됐던 점도 작용했다.

변화는 2005년에 왔다. 당시는 위기가 발생한 지 6년이 지난 시기로 기업 이익 구조에 대한 검증과 함께 50조원이 넘는 이익이 계속되리란 믿음이 생긴 때다. 몇 년간 반영되지 않았던 이익이 한꺼번에 반영되면서 2005년 한 해 동안 주가가 60%나 상승해 PER이 13배까지 올라갔다.

PER은 고정된 게 아니라 경제 구조와 성장률,금리 등에 따라 변화하는 수치다. 따라서 이 변수로 시장의 적정성 여부를 판단할 때는 지난 몇 년간 평균치로 판단 기준을 삼는 것이 좋은데 우리나라 PER이 어느 정도인가에 대한 문제는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다. 우선 2007년 유동성 장세부터 현재까지로 한정할 경우 지금 주가는 저평가가 맞다. 하지만 2000년부터 따져본다면 이미 PER은 적정한 수준에 도달했다고 봐야 한다.

◆채권시장 버블 우려

상품시장의 활성화 정도와 유가 등을 감안할 때 버블에 대한 우려는 채권시장이 더 높다고 판단된다. 미국 국채 금리가 바닥을 다져가고 있고 정크본드가 어떤 자산보다 높은 수익률을 기록하고 있다. 또 채권 발행이 늘어나고 있다.

부동산과 주식에서 버블이 사라질 때 가격이 급락하고 자산가격 하락이 경기 불황을 가져왔던 경험이 있어 투자자들은 자산 버블에 심한 거부감을 가지고 있다. 다행히 채권은 상품 성격상 원금 회수가 보장돼 있어 버블이 꺼지더라도 주식이나 부동산 같이 심한 타격을 주지는 않는다. 문제는 상환 기관이 도산하는 경우인데 버블이 붕괴됐다고 해서 기업이 없어지지는 않는다.

2000년 정보기술(IT)의 경우 버블 붕괴가 전체 경제에 심각한 영향을 미치지 않았던 것은 버블 붕괴 영향이 주가에만 왔을 뿐 기업의 대규모 도산이 발생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앞으로 채권의 버블이 해소되는 과정이 나타나더라도 파열음이 크지 않기 때문에 유동성이 다른 상품으로 전이되는 과정이 당분간 계속될 것이다. 1차 대상은 주식이다.

◆유동성 장세 당분간 지속

경기 둔화에도 불구하고 당분간 유동성이 주가를 끌어올리는 형태가 계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유동성이 어떤 때보다 풍부하고 금리가 낮아 투자를 위한 비용이 크지 않기 때문이다.

유동성이 주식시장을 지배하면 특징적인 몇 가지 형태가 나온다. 우선 주가 움직임이 빨라진다. 2007년 4월 코스피지수 1400에서 시작된 유동성 장세 때는 불과 7개월 사이에 주가가 50% 정도 올랐다. 또 시세가 돌변할 수 있다. 지금은 경기 둔화 시기라는 점에서 이 부분에 유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주가가 높은 수준이 되면 경기 부문의 문제가 제기되고 주가가 약해지는 과정이 나타날 수 있다.

주가가 속도를 내지 못하지만 상승은 꾸준히 계속될 것이다. 최소한 이달까지 연중 최고점이 계속 경신되는 상황이 예상된다. 경기 둔화가 진행되고 있지만 저금리 고유동성으로 약세 요인이 힘을 쓰지 못해 저점이 확보됐다는 기대가 커지고 있다. 기업 실적의 정점이 3분기라도 이익 수준이 현재 주가를 유지하는 데 어렵지 않다는 인식도 커지고 있다. 이는 실적이 모멘텀을 제공해 주지 않아도 주가 하락을 방지하는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의미가 된다.

이종우 HMC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 jwlee@hmcib.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