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통 신호등이 처음 등장한 곳은 1868년 런던이다. 가스불로 표시되는 적색과 녹색을 경찰관이 수동으로 조작했다. 하지만 걸핏하면 가스가 폭발해 경찰이 부상을 당한 탓에 촛불과 석유등으로 바뀌었다. 1914년 미국 디트로이트에 설치된 첫 전기신호등엔 적색 정지신호 한 개밖에 없었다. 사고가 자주 일어나자 1918년 황색과 녹색을 추가해 3색등이 됐다.

우리나라엔 1940년 기둥에서 3색 날개가 튀어나오는 '날개식 신호기'가 화신백화점 앞,을지로 입구 등 세 곳에 설치돼 신호등 시대를 열었다. 경찰관이 교통상황을 봐가며 손으로 조작했다. 그나마 안에 전등이 없어 밤엔 쓸 수 없었다. 해방 후 들어온 미국식 3색 신호등이 4색으로 바뀐 건 1980년대 초다. 신군부가 녹색 신호에서 좌회전하면 사고위험이 크다며 좌회전용 녹색 화살표를 따로 만들었다. 그러나 직진보다 좌회전을 우선시해 비효율적이란 지적이 나오자 30여년 만인 지난해 1월 '직진 후 좌회전'이 도입됐다.

신호체계가 바뀔 때마다 시민들은 혼란을 겪는다. 더구나 새 체계에 헷갈리는 요소가 있다면 혼란은 더 커진다. 광화문 세종로 등 서울 11개 교차로에 설치해 20일부터 시범운영중인 '3색 화살표 신호등'이 그 꼴인 모양이다. 새 체계에서 화살표는 좌 · 우회전 전용,원형은 직진 전용으로 사용되기 때문에 단순화된 측면이 있다. 또 멀리서도 좌회전 가능 교차로를 알 수 있는 것도 장점으로 꼽힌다.

문제는 좌 · 우 회전 금지를 빨간색 화살표로 표시한다는 것이다. 일단 화살표에 불이 들어오면 운전자들은 본능적으로 '허용'으로 받아들이기 쉽다. 색깔 인식은 그 다음이다. 빨간색 화살표에 불이들어와도 정지하는 데 익숙해지면 괜찮다는 게 경찰의 주장이지만 혼란이 불가피해 보인다. 실제로 빨간색 화살표를 보고 무심코 좌회전하다 사고를 낼 뻔했다는 민원이 잇따르고 있단다.

경찰은 전국 2만여 교차로 신호등을 10여년에 걸쳐 순차적으로 바꾼다는 방침이다. 350억원쯤 드는 교체 예산을 절약하기 위해서란다. 10년 동안 3색과 4색 신호등이 공존한다는 얘기다. 교통신호는 단순 명료한 게 생명이다. 새 체계는 단순하되 명료하지는 않은 것 같다. '직진 후 좌회전' 도입도 1년여밖에 안된 터다. 신호 체계가 자주 바뀌면 곤란하다. 단점부터 보완하는 게 우선이지 싶다.

이정환 논설위원 jh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