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 필독서] 인간으로 눈돌린 사마천…사기는 기록으로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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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기본기 / 사마천 지음 / 김원중 옮김 / 민음사 / 516쪽 / 2만5000원
사기세가 / 사마천 지음 / 김원중 옮김 / 민음사 / 998쪽 / 4만원
사기열전 1,2 / 사마천 지음 / 김원중 옮김 / 민음사 / 887쪽 / 933쪽 / 각 2만5000원
사기세가 / 사마천 지음 / 김원중 옮김 / 민음사 / 998쪽 / 4만원
사기열전 1,2 / 사마천 지음 / 김원중 옮김 / 민음사 / 887쪽 / 933쪽 / 각 2만5000원
한나라 고조 유방이 미천한 신분이던 시절부터 그의 부인이었던 여치는 아들 유영을 두고 훗날 황후가 된다. 그 아들은 고조가 죽은 후 황위에 오른 효혜제.혜제가 자신의 어머니를 태후로 받드니 여 태후는 실질적인 권력자로 등극한다.
태후는 남편이 살아 생전 총애했던 척희와 그의 아들 유여의가 호시탐탐 태자의 자리를 위협했던 과거를 잊지 않고 있다가 어린 나이의 여의(조왕)를 독살시킨다. 손과 발을 자르고 눈알을 뽑고 귀를 태운 후 벙어리로 만든 척 부인은 돼지우리에 가둬 '사람 돼지'라고 이름 붙인다. 며칠이 지나 혜제를 불러 구경토록 했는데 충격을 받은 아들이 큰 소리로 울며 병을 얻기도 했다.
전한(前漢) 시대의 역사가이며 한무제의 태사령이었던 사마천이 쓴 《사기 본기(史記本紀)》에 나오는 '여 태후 본기' 중 일부 내용이다. 사마천은 천자(天子)나 제왕들의 행적을 기록하는 '본기'에 꼭두각시에 불과했던 유약하고 무능한 혜제를 넣지 않고 실질적으로 천하를 장악했던 그의 어머니 여 태후를 포함시키는 파격을 보여준다.
사마천은 여 태후가 고조와 함께 말을 달리며 천하를 평정하는 데 공헌했고 도가의 무위(無爲)를 다스림의 근본 정책으로 삼아 사회 전반과 백성들의 경제생활을 안정시킨 사실을 인정한다. 그러나 동시에 정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표독하고 간사했던 여 태후가 자신의 일족을 주요 자리에 앉히며 전횡을 일삼았던 과정도 냉철하게 비판한다.
《사기》는 기전체(紀傳體) 형식으로 쓰여진 중국 역사서의 효시이다. 문학적으로도 뛰어난 가치를 인정받는다. '기전체'는 제왕의 정치와 행적을 중심으로 역대 왕조의 변천을 서술한 '기(紀)' 혹은 '본기(本紀)',의인이나 모사가 장수 반역자 등 굵직한 인물들을 주로 다룬 '전(傳)'혹은 '열전(列傳)'을 합친 말이다.
이 밖에 제왕을 모시면서도 자신의 지역에서 백성을 다스렸던 제후들의 이야기를 다룬 '세가(世家)',각 시대의 역사 흐름을 연표로 간략히 나타낸 '표(表)',제례나 천문 경제 법률 등의 문물과 제도에 관해 항목별로 연혁과 변천을 기록한 '서(書)' 등이 기전체 방식을 구성한다.
《사기》는 본기 12편,표 10편,서 8편,세가 30편,열전 70편 등 총 130편의 이야기로 구성돼 중국의 역사 2600여년을 아우르는 역사서다. 첫머리를 장식하는 본기는 열전에 비해 덜 알려져 있지만 담백한 문체 속에 최고 권력자들의 삶을 되살려 놓고 있다.
중국 고대 전설에 나오는 다섯 명의 제왕에서 출발해 하 · 은 · 주와 진나라를 거쳐 사마천이 살던 시대인 한무제까지 그렸다. 사마천은 초나라의 장수로 진나라의 멸망에 기여하며 유방과 대결했던 '항우'나 고조 사후에 권력을 누렸던 '여 태후'는 비록 제왕은 아니지만 현실을 움직인 인물로 과감하게 '본기'에 넣었다. 또 한무제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도 권력자를 비롯한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고 개인의 입장에서 역사를 바라봤다는 점을 잘 보여준다.
《사기세가》는 춘추 전국시대부터 한나라 때까지 각 지역에서 거대한 세력을 지니고 자웅을 다툰 제후들의 흥망성쇠 과정을 다룬 28편에 '공자 세가'와 '진섭 세가'를 추가,총 30편을 완성했다. 정치의 질서와 통치자들이 지녀야 할 이상적 모습을 보여준다.
독자들에게 가장 친숙한 《사기열전》은 제왕과 제후를 위해 일했던 굵직한 인물들을 다뤘다. 배반과 충정,이익과 손실,물질과 정신,도덕과 본능,탐욕과 베풂 등 양자택일의 기로에 선 신분을 초월한 다양한 인간상을 제시하며 인간 사회의 본질적인 문제에 대해 고찰하게 만든다.
번역자인 김원중 건양대 중국언어문화학과 교수는 "사마천은 아버지의 유지를 받들어 수십 년간 역사서 편찬에 몰두하는데 한때 한무제로부터 생식기를 거세당하는 '궁형'을 당하고도 살아 남아 죽간(竹簡)에 이 방대한 역사서를 기록했다"며 "객관적인 자료와 탐방을 기초로 했고 역사가 천(天)의 절대적 권위에서 서서히 인(人)의 사유 세계로 내려오는 전환의 과정이라는 의식도 반영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확한 역사 기술과 투철한 역사관,치밀한 구성,인간의 본질을 탐구하는 흥미진진한 전개 등이 《사기》를 '중국의 인간학 교과서'라고 부르는 이유다.
문혜정 기자 selenmoon@hankyung.com